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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장애인?

입력
2016.04.2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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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깊은 어떤 ‘형님’이 전해 준 인상 깊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는 장애인 시설을 찾아 다니며 음식을 나눠주길 좋아했던 부친과 어릴 때부터 늘 동행을 했다고 한다. 특히 기억나는 곳은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한센병 환자촌이었는데, 늘 환자들을 만나고 같이 어울려 놀았기 때문에 단 한 번도 그들의 일그러진 외모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단다. 단지 몸이 아플 뿐, 자신보다 낮추어 바라볼 이들이 아니라는 형님의 말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대하는 일반적이고 통념화된 우리 사회의 ‘불편한’ 시선들을 한번쯤 돌아보게 한다. 그만큼 ‘보고 만나는’ 행위, 즉 대면 자체가 자기와는 다르다는 식의 차별의식을 일으키는 편견들을 허물어뜨릴 만한 좋은 시도인 것이다.

늘 곁에 두고 보는 행위를 지속하다 보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기 마련이다. 대면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상대의 존재감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 저절로 알게 된다. 자주 대면하지 않으니 알 턱이 없고, 알아 갈 기회나 판단의 기회도 극히 드물어 점점 나와 다른 세상, 다른 존재라는 고정된 관념들이 일반화되기 쉬운 것이 아닐까. 장애를 가진 이들, 피부색이 다른 이들, 가난하거나 특정한 고통 속에 놓여있는 이들을 향한 고정관념은 어찌 보면 이런 대면의 기회부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너무나 익숙하게 쓰이고 있는 ‘장애인’이라는 명칭 자체가 이미 너무나 차별적이다. 그저 신체 또는 정신이 일부 불편할 뿐 사람이 지닌 존엄한 가치와 의미에 높낮이가 있을 수 없을 터인데 오히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라는 수평적인 관계보다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수직적 관계로 인지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지 않은가. 장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경계를 더욱 공고히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20일은 올해로 서른여섯 회를 맞이한 장애인의 날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었지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장애인을 위한 ‘보여주기용’ 관변행사들이 떠들썩하게 생겨난다. 그 동안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방송을 비롯한 여러 언론매체들도 이날만을 위해 준비한 온갖 ‘생색내기용’ 영상물과 기사들을 가득 풀어놓는다. 이날 벌어지는 일련의 소식들에 기대어 보면 당장 장애 관련 복지정책이나 사회적 편견 등의 현실적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 것만 같다. 그러나 겉치레 가득한 벅찬 감동의 메시지들에 취한 하루가 끝나고 나면 무대와 조명이 사라진 풍경 앞에서 이내 허탈해지기 마련이다. 이제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에 무심한 나머지 364일이 하루하루 다시 흘러가기 때문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사람이 아닌, 그날 기념일을 위해 매년 되풀이되는 익숙한 장애인의 날 풍경이다.

불현듯 달력에 있는 모든 ‘무슨 무슨’ 기념일들은 왜 이리 많아 보이는지, 그 의미를 떠나 언젠가부터 행사나 잔치만을 위해 제정된 게 아닌가 여겨질 만큼 덧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어느 기념일이든 정작 살피고 보듬어야 할 본질보다는 모양새 내기에만 주력한 채 행사 하나로 마치 모든 책임을 다했다는 허위적 행태들이 영 보기 불편하다. 오죽하면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라는 말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오겠는가.

인터넷 지식백과사전에서는 장애인의 날에 대해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라고 쓰여 있다. 내친 김에 더 읽어보면 이런 내용도 나온다. ‘4월이 1년 중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어서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둔 것이며, 20일은 다수의 기념일과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듣기에는 꽤 거창하나 왠지 미덥지는 않다. 제정될 때부터 이미 사람 자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장애인이라는 대상화된 명칭과 재활의욕 고취라는 명분을 내세움으로써 사실상 장애 자체를 차별의 사회적 근거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심으로 우려될 따름이다.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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