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약 신청 반려로 책임 추궁 시사
당국, 최 회장 일가 주식 처분 조사로 압박
조 회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사재출연해야 자율협약 받아줄 듯
산업은행이 25일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을 반려하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의 사재 출연 여부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채권단 안팎에선 조 회장과 최 회장이 한진해운 경영 부실에 대해 사재 출연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채권단이 이날 자율협약 신청을 거부한 이유는 자구계획안을 좀 더 보완하라는 것이었다. 용선료 협상 등에 대한 세부 추진 방안과 자산매각 등 구체적인 자구안을 내라는 게 채권단의 주문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 이유일 뿐이고 채권단이 진심으로 원하는 건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사재 출연은 법적 근거가 없다. 주식회사의 주주는 출자금액에 대해서만 유한 책임을 지는 만큼 부실이 심하다고 개인 돈을 내놓으라고 강요할 순 없다. 그러나 우리 나라 기업 오너들이 마치 황제처럼 회사의 과실을 독차지하면서 한껏 누려온 점을 감안하면 회사 부실 시 누구보다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국민들 정서다. 더구나 똑같은 자율협약을 신청한 현대상선은 현정은 회장이 이미 300억원의 사재를 내놓은 만큼 한진 오너만 예외가 될 순 없어 보인다. 세계 해운사 순위 8위인 한진해운은 현대상선(18위)보다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오너 사재 출연도 현대상선보단 많아야 한다는 논리도 나온다.
이 경우 과연 누가 사재를 출연할 지가 문제다. 현대상선은 줄곧 현 회장이 경영권을 행사해 왔지만 한진해운은 최 회장으로부터 조 회장으로 경영권이 이동,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게 쉽지 않다. 먼저 최 회장은 남편(고 조수호 회장)이 숨진 2006년부터 2014년까지 한진해운을 운영했다. 현재의 부실은 주로 이 시기에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일차적 책임은 최 회장에게 있다. 더구나 최 회장은 2013~14년 보수와 퇴직금 명목으로 모두 97억원을 받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가 1조8,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던 때다. 특히 최 회장은 두 딸과 함께 보유해 온 한진해운 주식 96만7,927주(0.39%)를 지난 8~21일 전량 매각했다. 한진해운은 이튿날인 22일 자율협약 신청 결정을 공시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이미 최 회장 일가가 한진해운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손실을 회피했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물론 이미 수년 전 손을 털고 나간 이에게 사재 출연까지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 지에 대해선 반론도 없잖다.
조 회장의 사재 출연 문제는 더 복잡하다. 일단 경영권을 넘겨받은 시기로 볼 때 부실의 주된 책임은 없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9회 말에 나온 구원투수가 안타를 몇 개 맞았다고 패전의 책임을 돌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더구나 2013년 이후 금전대여, 유상증자참여, 영구채 매입 등 지금까지 한진그룹에서 1조원 안팎을 한진해운에 투입한 만큼 정상화를 위해 나름 애쓴 점도 인정된다. 그렇다고 조 회장이 면죄부를 받긴 힘들어 보인다.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부실의 직접 책임은 없더라도 어차피 경영권을 넘겨 받으면 이후 회사 리스크는 모두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냉정히 따지면 최 회장보다 오히려 조 회장이 책임질 일”이라고 말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도 “최 회장이 맡아 운영할 때도 조 회장이 계열분리를 거부했기 때문에 한진해운은 여전히 한진그룹 계열사였다”며 “부실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진해운이 조 회장과 최 회장의 사재 출연을 포함해 산업은행이 수용할 만한 수준의 추가 자구안을 마련해 다시 자율협약 신청서를 제출하면 채권은행들은 신청서를 회람한 뒤 채권자 협의회에 자율협약 안건을 부의하게 된다. 자율협약은 채권은행 100% 동의가 있어야 개시되는 만큼 사실상 채권은행과 사전 조율 역할을 하게 될 산업은행을 얼마나 만족시키는 추가 자구안을 내느냐가 관건이다. 조 회장과 최 회장에 대한 압박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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