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따른 기본급 차이 그대로
비정규직 업무범위 ‘보조’로 규정
같은 일해도 임금수준 낮게 책정
무기계약직 전환은 기관 자율에
기관장이 심사 기준ㆍ평가법 결정
산하 기관별로 천차만별 불보듯
전문가들 “본질은 외면” 지적
서울대가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완화하겠다며 개선 방안을 내놨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비정규직 기간제 직원은 정규직 법인직원과 같은 업무를 해도 임금을 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등 차별은 그대로라는 비판이다.
25일 서울대에 따르면 대학본부 측은 지난 2월 ‘기간제근로자 관리 개선안’과 ‘자체직원 노무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개선안에는 ▦법인 직원(정규직)과 자체 선발 직원(기간제 비정규직)의 업무 조정 ▦복리후생ㆍ실비 변상 등 동일 수당 지급 ▦자체직원 운영방안 가이드라인 및 통합관리시스템 구축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의도는 좋았다. 그간 꾸준히 지적돼 온 정규직ㆍ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해소하려 대학본부가 나서 기간제 직원의 업무 범위와 보상 체계의 근거를 명확히 하겠다는 취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대의 개선안은 기간제 직원 관리를 여전히 각 기관 자율에 맡겨 처우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현재 서울대 직원은 총장이 임용한 법인직원, 단과대와 연구소 등 각 기관장이 뽑은 자체직원으로 나뉘는데, 자체직원 비중은 31개 국립대 중 두 번째로 높은 35.6%(833명)에 달한다. 처우도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교수와 정규직은 서울대병원에서 1인당 900만원에 달하는 진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으나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비정규직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명절수당, 부서 워크숍 참여 배제 등 보이지 않은 차별을 더하면 격차는 현격히 벌어진다.
개선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은 법인직원과 자체직원의 업무를 조정한 부분이다. 이번에 마련된 노무관리 가이드라인은 ‘핵심적이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주요업무’는 법인직원이 수행토록 하고 자체직원의 업무 범위는 보조업무로 한정했다. 그러면서 ‘직무에 따른 기본급 차이는 제외한다’고 못박았다. 이럴 경우 자체직원이 주요업무를 떠맡는다 해도 기본급은 주요업무에 비해 처우가 낮은 보조업무로 적용 받게 돼 계속 저임금을 감수할 가능성이 커진다. 서울대 한 단과대에서 11년째 행정직으로 일하는 A씨는 “어떤 학부 행정실에는 정규직 3명, 비정규직 4명이 근무해 비정규직 직원이 담당하는 주요업무 비중이 상당하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본부는 비정규직에겐 보조업무와 관련된 기본급만 받으라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 소속 한 교수도 “법인직원이 책임이 더 많이 부여됐다고 해서 자체직원에게 덜 힘든 일을 시킬 것이라는 논리는 상식 이하의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무기계약직 관련 지침도 문제가 많다. 동종 업무에 종사한 지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 자격을 갖추지만 서울대는 최근 3년간 대상자 699명 중 149명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전환율(21.3%)이 낮다는 지적에 따라 학교 측은 전환자격(2년)을 모든 기간제 근로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혔으나 세부 심사기준과 평가 방법은 각 기관에 일임해 ‘무늬만 개선안’이란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 관계자는 “학교 본부가 무기계약 결정에 관여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기관장 의지에 따라 전환율이 춤을 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는 “업무조정안이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서 급여가 많은 법인직원이 책임이 큰 일을 맡아서 하라는 의미”라며 “모든 직원 관리에 대한 법적 책임은 총장이 지기 때문에 부조리가 끼어들 가능성은 없다”고 해명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서울대가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 형태를 구분하는 기준은 주업무나 보조업무와 같은 업무특성이 아닌 근로의 상시ㆍ지속성 여부”라며 “대학이 근로 기간과 무관한 다른 조건을 부과해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것은 기간제보호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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