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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삭발하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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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삭발하는 노인들

입력
2016.04.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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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는 “세계 어디에도 한국처럼 노인을 공경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 한국을 방문했던 친한 작가 게오르규는 한국 문화 전반에 애정이 많았지만 특히 노인 공경 문화를 높이 평가했다. 급속한 사회 변화로 노인 존중이 과거만 못하지만 겉으로는 아직 노인 공경이 사회윤리로 자리하고 있다. 3년 전 한 50대 남성이 자신을 90대라 속여 “어르신” 소리를 듣고 대접을 받으며 복권을 위조하다가 들킨, 황당한 사건도 이런 문화와 무관치 않다.

▦ 최근 논란에 휩싸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도 노인존중 문화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어버이라는 단어를 명칭으로 사용한 것도 그렇고 5월8일 어버이날에 설립한 것도 그렇다. 이름만 보면 자식 걱정하고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는 그 따뜻하고 애틋한 존재를 표방한 것 같은데 실제 행동은 그것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어버이연합의 극단적 행동 중 하나가 통합진보당 해체 촉구 집회에서 혈서를 쓰겠다며 손가락에 칼을 대고 삭발까지 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101세 노인까지 머리를 밀었다.

▦ 어버이연합이 야당 인사만 노린 것은 아니다. 2013년 정계에서 은퇴하라며 문재인 의원 화형식을 하더니 다음날 야당과 타협하지 말라며 황우여 당시 여당 대표 화형식까지 했다. 총선 전 김무성 대표가 대구 동을 등 다섯 개 지역구 후보 무공천을 발표했을 때는 그를 비판하며 머리를 삭발했다. 성향이 다른 아사달노인회 노인들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현직 경찰서장을 폭행하기도 했다. 세월호 단식장 옆에서 치킨을 먹은 것은 말로 다하기 힘들 정도로 유치하다. 이들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좌충우돌을 거듭했다.

▦ 시중에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면 자신은 가급적 뒤로 물러서고 대신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하라는 뜻이다. 온라인에는 이미 자식뻘, 손자손녀 뻘 되는 젊은이들이 어버이연합을 손가락질하는 글이 차고 넘친다. 결국 어버이연합 때문에 우리 사회의 노인 공경 전통이 허물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을 부추기거나 뒷돈을 댔다는 청와대 행정관과 전경련, 이들을 감싸고 돈 일부 언론이 세대갈등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어버이연합이 야기하고 있음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 박광희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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