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그 누구도 웃으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습니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분들도 감정이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김주완 판사가 지난 22일 은행원에게 웃으라고 강요하며 행패를 부린 30대 남성을 꾸짖었다. 김 판사는 업무방해와 폭행죄로 입건된 허모(34)씨의 즉결심판 법정에서 그에게 구류 5일에 유치명령 5일 내렸다고 25일 밝혔다. 경범죄를 저지른 자를 심판하는 간이절차인 즉결심판에서 구류 처분이 나오는 것은 이례적이다. 유치명령이 함께 떨어진 것은 7일 이내에 청구할 수 있는 정식재판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경찰서 유치장에 5일간 있으라는 것이다.
허씨는 지난 8일 서울 강남의 한 은행에 두 차례 찾아가 소란을 피웠다. 은행 여직원에게 “서비스직이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 “일할 때는 웃어라”고 강요했다. 또 현금 5,000만원을 올려놓고 “내가 보는 앞에서 직접 돈을 세어라”며 거듭 강요했다. 허씨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손이 떨려 숫자를 못 적겠다”며 직원의 업무를 방해했다. 10분이면 끝나는 일은 허씨의 ‘진상’으로 1시간 넘게 지연됐다.
김 판사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서비스직 종사자는 무조건 고객에게 맞춰야 한다는 허씨의 사고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판사는 이어 “즉결 법정에서 허씨를 처벌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정식 재판에 넘겨 전과를 남기기보다 피고인의 앞날을 생각해 즉결법정에서 선고한다”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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