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개봉한 독립영화 ‘스틸 플라워’는 박수 받을 만한 영화다. 출신을 알 수 없는 소녀(정하담)의 힘겨운 삶을 그린 이 영화는 평범의 궤도에서 이탈한다. 버려진 집에 홀로 사는 소녀의 출신이나 거리의 삶을 살게 된 이유를 굳이 밝히지 않는다. 전통적인 화법을 거부하면서도 관객을 소녀의 불운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지녔다. 약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비정한 세상의 모습을 비추며 소녀의 가냘픈 희망을 응원한다. “일하고 싶다”는 소녀의 절규는 개인의 영역에서 좀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며 공감을 얻는다. 영화는 구호를 외치거나 분노를 터트리지 않으면서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끄집어낸다. 평단의 호평을 받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21일까지 ‘스틸 플라워’를 본 관객은 2,012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 좋은 영화가 관객의 호응까지 넓게 받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낮은 수치다.
지난 7일 열린 제3회 들꽃영화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산다’(감독 박정범)도 비슷한 처지다. 살아간다는 게 힘겨운 투쟁인 밑바닥 인생들의 막막한 일상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는 감독의 땀이 깊이 배어있다. 주연을 겸한 박 감독은 고된 노동을 그대로 연기하며 극단의 사실주의를 스크린에 구현한다. 지난해 개봉한 ‘산다’의 관객은 4,398명이었다.
따분하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인 예술영화들은 정말 장사가 안 되는 걸까. 지난 13일 재개봉한 이탈리아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7)는 21일까지 5만1,583명을 모았다. 1999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로베르토 베니니)과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영화라지만 좀 과한 흥행 성과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재개봉 뒤 일일 흥행순위 10위권에 계속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비슷한 시기 개봉(14일)한 멕시코영화 ‘크로닉’의 관객은 4,002명이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수작이지만 관객들은 외면하고 있다. 관객수로 두 영화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세계 영화계에서 새롭게 두각을 나타내는 감독(미셸 프랑코)의 신작이 옛 영화에 밀리는 모습은 씁쓸하다.
최근 극장가에는 재개봉 영화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도 재개봉 바람을 타고 예상 밖 환대를 받고 있다. 재개봉은 잠깐 동안의 유행에 그치지 않을 듯하다. 언론을 대상으로 한 재개봉 영화 시사회가 1주일에 한두 차례 열린다. 중년층이 옛 영화를 만나며 추억에 젖고, 젊은 관객들이 고전의 향취를 느끼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수작들은 외면 받고 재개봉 영화에만 관객들이 줄을 서는 모습은 우려를 살 만하다. 대작 상업영화나 옛 영화가 점령한 요즘 극장가에서 국내 영화산업의 암담한 미래를 예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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