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는 지구 곳곳에 전파돼 한국까지 내상을 입혔다. 상처가 낫지 않은 채 맞이한 2009년,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필요했다.
원래 제목은 ‘20세기의 선각자들(The Visionaries of 20th Century)’인 이 책에는 민주주의, 생태와 환경, 영성의 영웅들이 소개됐다.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등 책에 나오는 선각자들은 미래를 생각하면 지당하나 인류가 미뤄놓은 과제를 말한다. 신생 출판사의 묵직한 각오에는 이 무거운 주제가 적합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출간을 얼마 앞두고 나는 소규모 ‘북 펀드’를 시도했다. 제작과 마케팅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신생 출판사에 관심이 생기길 기대했다. 열 명이 모였고 각자 60만원씩 투자했다. 투자 조건은 "판매 실적에 따라 최대 2배, 최소 80% 보장". 다행히 출간한 지 반년이 지나 원금을 돌려줄 수 있었다. 2015년 가을, 출간도서가 100권을 훌쩍 넘었을 즈음 창사 7주년을 맞이해 당시 멤버를 모시고 저녁식사를 했다. 서로가 감개무량해 했다.
출판은 사람이 자산인 업이다. 저자와의 인연이 두 번째 책을 낳고, 또 다른 저자를 불러온다. 추천사 한 줄 써준 인연이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모른다. ‘희망의 근거’에 긴 해제 같은 추천사를 덧붙여준 분은 국내 생태학의 최고 권위자인 최재천 교수다.
20세기 선각자들이 이전 세대와 가장 큰 차별화된 부분은 '생태에 대한 자각'이었다. 인간의 편리만 진보로 인식하고 환경에 대한 의식은 낙후했던 개발의 시대에 선각자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이러한 책의 메시지를 잘 알려줄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았는데 당시 네트워크가 전혀 없었다. 최재천 교수에게 무작정 긴 메일을 썼다.
그것이 계기가 돼 지금 그는 메디치미디어의 자매 사에서 운영 중인 ‘무동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다. 인문대를 졸업한 ‘문송이(문과생이라 죄송하다는 뜻)’들을 위한 학교다. 인연은 오래간다. 누군가 출판을 시작한다면, 처음엔 조금 말릴 것 같다. 그 다음엔 무엇보다도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라고 조언하겠다.
소중한 인연을 남기며 출판된 첫 책이다. 그리고 ‘첫 책’만큼이나 중요한 질문들에 스스로 답을 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왜 출판사 이름이 메디치미디어인가? 메디치 가문이 추구한 인본주의, 특히 가치의 다양성을 널리 알리는 출판사가 되고 싶다. 우리는 특정한 이념·종교·가치가 절대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진리의 상대성을 다루려 애쓰고 있다.
출판을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싶다.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를 이끌며 죽었던 고전을 살리고, 새로운 지식을 발전시켰다. 메디치미디어의 지향점도 마찬가지다. 인문ㆍ교육ㆍ과학 등 우리 시대의 중요한 생각을 전해 독자가 ‘나도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도전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오늘도 메디치미디어는 달려 나간다.
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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