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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 뛰는 벼랑끝 공인중개사

입력
2016.04.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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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주택거래 작년보다 30% 감소

보험·복권방·대리기사 등 부업

임대료·생활비 벌며 근근이 버텨

변호사 중개서비스 1월 선보이자

생존권 걸린 법적 분쟁 비화

공인중개사 업계 체질개선 지적도

“더 물러날 곳도 없는데 이젠 변호사들까지 난리네요. 차라리 부동산을 접고 아내가 하는 카페 영업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서울 강동구에서 11년째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송모(63) 대표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달 송씨가 성사시킨 거래는 단 한 건, 손에 쥔 돈은 100만원이 전부였다. 매월 70만원씩 나가는 사무실 임대료와 관리비, 생활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나마 송씨의 ‘믿는 구석’은 아내다. 실장 역할을 하던 부인 백모(57)씨는 중개사 수입이 줄어들자 지난해 사무실 한 켠을 터 테이크아웃 커피점을 열었다. 여기서 얻는 순수익은 월 100만원 안팎. 송씨는 21일 “어떤 달은 카페 수입이 부동산 운영 수익을 웃돌기도 한다”며 “이제 부업은 선택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략이 됐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들이 너도나도 ‘투잡(two job)’ 전선에 뛰어들 정도로 생존 위기 상황에 처했다. 경제난과 정부의 주택대출 규제 강화 정책에 따른 부동산 시장 불황 때문이다. 이에 더해 변호사들까지 부동산중개업에 눈독을 들이면서 ‘밥그릇 싸움’도 격화하고 있다.

중개사들의 어려움은 급감한 매매 거래량에서 확인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봄 이사철을 맞은 지난달 전국의 주택매매 거래 규모는 7만7,853건.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0.4%나 감소했고, 최근 5년 평균(월 8만6,000건)과 비교해도 9.9% 줄어든 수치다.

경색된 주택시장이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자 중개사들은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마련하려 갖은 묘안을 짜내는 상황이다. 이들이 선호하는 대표적 부업은 보험판매. 매매를 중개할 때 주택화재보험 등 계약과 관련된 보험을 알리고 권유하는 일인데, 몇 시간의 교육만 이수하고 자격증을 따면 어렵지 않게 업무를 병행할 수 있다. 송씨처럼 사무소 공간 일부를 떼어 중개업무와 무관한 꽃집, 복권방, 이발소 등을 운영하는 ‘숍인숍(shop-in-shop)’ 형태 업소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사업자 등록은 별도로 하되 여러 명이 함께 공간을 이용하는 공동사무소도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서울 역삼동의 한 공동중개업소 대표는 “사무실에 상주하지 않더라도 한 달에 25만원만 내면 상담실과 음료를 이용할 수 있어 월세와 관리비 절감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젊은 중개업자들 사이에선 낮에는 중개업무를, 밤에는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공야대’ 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공인중개사 윤석진(48)씨는 “사무실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대리운전을 뛰게 됐는데 월 90만원 정도를 꾸준히 벌면서 다른 중개사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변호사들의 중개업 진출 시도는 중개사업계에 심각한 위협이다. 특히 지난 1월 변호사들이 법률자문 제공을 통해 부동산 매매ㆍ거래를 진행하는 중개서비스 ‘트러스트’를 선보이고 지난달 첫 거래를 성사시키자 민주공인중개사모임이 트러스트 대표를 경찰에 고소하는 등 법적 분쟁으로 비화한 상태다.

근본적으로 시장 변화나 진입장벽 논란을 떠나 그간 부동산 활황을 타고 중개료 수익에만 안주했던 공인중개사 업계도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선진국들은 법인화를 통해 규모를 키우고 부동산 관리부터 컨설팅, 분쟁 해결까지 철저하게 소비자 수요에 부응하고 있다”며 “공인중개사 스스로 전문성을 갖춰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변호사들과의 경쟁에서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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