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좌익효수 국정원법 무죄”
‘문죄인(문재인)씨○○기 뒈져야 할 텐데. (중략) 애국보수 만세.’ ‘공주님(박근혜)을 우리 통령으로~ 각하.’ 2012년 대선을 불과 8일 앞두고 국정원 직원 유모(42)씨가 노골적인 정치 성향을 드러내며 쓴 댓글들이다. 스스로를 ‘좌익효수’(左翼梟首ㆍ좌파의 머리를 베어 매단다는 뜻)로 칭한 국정원 직원이 민감한 선거 국면에서 국가공무원으로 해선 안 될 정치관여를 했다고 검찰은 봤다. 하지만 21일 법원은 “낙선 목적의 댓글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면서도 ‘선거운동’은 아니어서 죄를 묻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이창경 판사가 이날 법정에서 “선거운동에 관한 확고한 판례”라며 밝힌 세 가지 요건 즉 ‘특정 후보의 당ㆍ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과 그를 위한 능동성ㆍ계획성’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우선 선거와 관련해 유씨가 남긴 댓글 수가 적다는 사실이 선거운동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판단의 근거가 됐다. 이 판사는 “2011년 재보궐 선거 당시 손학규 후보에 대한 비방 글은 6건, 2012년 대선 과정에서의 댓글은 4건에 불과했다”며 “이를 근거로 특정 후보자의 낙선을 위한 목적으로 능동적이고 계획적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선 당시 댓글 4건 중 2건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폭로한 야당을 비난하는 것으로, 이는 유씨가 자신이 소속된 국정원을 보호하거나 방어하려는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도 했다. 또 유씨가 각 선거 국면에서 불과 2, 3일씩만 댓글을 달았고, 게시 간격도 1시간 단위로 짧았으며, 선거에 임박해서는 더 이상 댓글을 게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근거로 덧붙였다.
하지만 유씨가 선거 국면보다 훨씬 앞서서나 선거 뒤에도 지속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비난했기 때문에 선거 당시 댓글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단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이 판사는 “유씨의 댓글들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보다는 특정 후보자에 대한 반복적이고 모욕적인 표현 또는 부정적 감정 표출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기사를 보고 즉흥적으로 댓글을 달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날 판결은 2014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1심 법원이 근거로 내세운 ‘능동성ㆍ목적성ㆍ계획성’ 기준에 비춰, 유씨는 정치적 의도가 뚜렷하고 반복적이어서 선거운동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보고 국정원법 9조 2항 4호를 적용해 기소한 검찰의 판단과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유씨는 2011년 1월~2012년 11월 인터넷 커뮤니티에 16개의 글과 3,451개의 댓글을 게시했다. “절라디언들은 전부 씨족을 멸해야 한다” “홍어 종자” 등 호남 비하 발언은 물론, 한명숙ㆍ임수경 의원이나 아프리카TV 진행자 이경선씨 등을 ‘빨갱이’ ‘창녀’등으로 모욕했고, 이씨의 딸에 대해선 성폭력성 글까지 올렸다. 이 중 법원은 이씨와 딸에게 성적 폭언을 일삼은 모욕죄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 판사는 “11살 어린이에게도 성적 비하 댓글을 단 유씨의 행위로 국정원의 적법한 공무수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됐다”면서도 “다만 본인이 반성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초범인 점 등을 고려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씨는 대공수사국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징역형이 확정되면 유씨는 국정원 직원으로 남을 수 없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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