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유전자, 혈액 등 인체 물질 용도
현행법에선 연구용으로 제한
바이오, 의료 등 신산업 길 막혀
박대통령 “대책 마련을” 지시
“큰 병원에 갈 필요 없이 동네 의원에서도 어떤 병이든 쉽게 검사하고 바로 결과를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진단기기를 보급하는 게 꿈이다. 기술은 있다. 그러나 임상시험에 쓸 샘플이 부족해 허가 신청이 늦어지고 있어 애가 탄다.”
지난해부터 샘플을 기다리고 있다는 한 생명공학기업 대표의 하소연이다. 그가 말하는 샘플은 혈액이나 가래, 유전자, 세포 등 사람 몸에서 채취한 물질(인체자원)을 말한다. 인체자원 활용이 연구용으로 제한(본보 3월 29일자 3면 ‘규제개혁 없이 미래 없다’ 참조)돼 있는 우리나라에선 바이오ㆍ의료 기업들의 신산업 진출이 쉽지 않다.
21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33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모인 전문가들은 인체자원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개선해줄 것을 건의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장준근 크리액티브헬스 대표이사는 “난치병 진단이나 치료 기술 상용화에 필요한 인체자원 활용이 어려워 연구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며 “인체자원 활용 확대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시급한 분야 중심으로 민관이 협업해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규제를 풀고 재정적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인체자원은 의료법이나 생명윤리법, 관계기관 내부 규정 등에 따라 상업적 목적의 활용이 제한돼 기업이 직접 제공받을 길이 없다. 제품 개발을 위해 인체자원이 필요한 기업은 일일이 병원이나 연구기관에 요청한 뒤 윤리위원회 승인과 임상시험 허가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히 난치병이나 희귀병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인체자원이 희소, 여러 병원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난치병으로 꼽히는 다제내성(여러 가지 약이 듣지 않는) 결핵 진단기술을 개발하는 생명공학기업의 임원은 “국내에서 결핵 샘플을 임상시험에 필요한 만큼 모으려면 2년 가까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할 수 없이 해외로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의 경우 인체자원을 모아두는 병원별 은행이나 국가기관에서 좀더 편리하게 인체자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주면 바이오 신산업 창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국립보건원은 자체 보유한 인체자원 현황을 외국에도 알리면서 여러 제약사와 제품 공동개발을 추진 중이다. 생명공학업계 관계자는 “독일에서는 정부가 운영하는 임상검사센터에서 인체자원을 신청한 기업에게 직접 제공해주기 때문에 이를 통해 작성된 임상보고서는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다”며 “우리도 장기적으로 이런 모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날 회의에선 암과 유전병 등 특정 질환에만 한정돼 있는 유전자 치료 연구 범위를 확대하고, 진단이나 치료 같은 의료행위와 무관한 의료기기는 평가 기준을 완화하는 등의 내용도 함께 건의됐다. 이번 바이오 규제 개선안에 대해서는 향후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의결을 거쳐 관계부처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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