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지난 대선 복지 공약의 초심으로 돌아가라
저출산·고령화의 시대에 ‘부양의 사회화’가 긴급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시절 대표 발의한 사회보장기본법의 정의를 보자. 출산, 양육, 실업, 노령, 장애, 질병, 빈곤 및 사망 등이 모두 복지의 대상이다. 이런 복지를 가족의 품 안에서 챙기던 시대는 갔다. 싱글족, 독거노인 등 예전에는 보기 힘들던 새로운 가족생활이 일상화된 지금, 부양방식 전반에 관한 인식전환이 시급하다.
세계1등의 저출산이 이어지면서 고령화 속도가 가속화된다. 복지 확대 없이는 해결이 난망한 사회적 위험들이다. 국가나 개인이 복지에 쓰는 돈을 따져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빼고 가장 적은 나라가 한국이다. 경제의 불씨가 꺼져가는 지금 세금 걷기가 쉽지 않다고 작디작은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이대로 방치하자고? 저출산·고령화의 늪에서 허덕이는 디스토피아가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일 것이다.
고령화의 심화 속에서 자식들의 효도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가 않아 보인다. 복지나 세금 늘리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제엘리트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누가 뭐래도 시장이 우선이다. 믿을 것은 자기 살 길을 찾아가는 각자도생의 복지요, 돈이 있어야 복지도 챙길 수 있는 게 우리나라다. 공무원연금을 받거나 빌딩 한 채는 있어야 보장되는 승자독식의 금빛 노후. 고령화 사회의 복지체계도 빈익빈부익부가 전개될 판이다.
‘가족에 의한 복지가 미풍양속’이란 말, 뜯어볼수록 기만적이다. 애 키우고 노인 돌보는 거라면 어머니, 며느리, 딸만 희생하는 게 우리네 질서다. 가부장적 노동시장에서 대학 나온 여성들의 직장생활이란 게 지옥도가 따로 없다. 친정어머니가 외손주를 키워줘야만 가까스로 유지되는 여성들의 직장생활. 여성에 대한 이런 종류의 홀대가 계속되는 한 결혼과 출산의 보이콧 현상은 막아낼 도리가 없어 보인다.
모성과 효의 이름으로 유지되던 부모 자식 간 ‘사적 부양의 교환체계’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늙은 부모를 모시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출산은 고사하고 결혼마저 기피하는 능력 있는 미혼여성 ‘골드미스’가 선망의 대상이다.
이제 부모세대로부터 세금을 걷어서 자식을 국가가 키우자. 또 자식세대의 세금으로 국가가 부모세대를 부양하도록 하자. 바야흐로 이런 ‘공적 부양의 교환체계’에 관한 세대 간 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 관습적으로 강제됐던 가족 간의 돌봄이 공정한 납세와 부양으로 이루어진 복지국가의 공적 제도로 전환되는 것, 모든 선진국이 경험한 자본주의 수정의 역사요 그러한 수정 없이 제대로 버틴 사회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복지를 늘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시대정신이요 가만히 있어도 늘어나도록 되어있는 게 한국의 복지다. 하지만, 이에 필요한 재원마련을 얘기하는 정치인은 찾기가 힘들다. 증세 없는 복지의 유효기간은 얼마 남지가 않았다. 국민부담을 늘리지 않은 채 복지확대를 서슴지 않다 망조 들었던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복지효율화, 세출구조조정, 지하경제양성화를 할 만큼 했음에도 여전히 복지재원이 모자라는 지금, 장기적인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여야 지도자들이 나서야 할 때다. 대선까지 시간이 남아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말자. 3당이 머리를 맞대서 사회적 합의기구를 가동하자. 꼭 필요한 복지를 늘려가면서 합리적으로 돈을 걷을 방책쯤이야 어렵지 않게 마련될 것이다.
여당의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구조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만은 확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공공 노동 금융 교육에 이어 산업 구조개혁까지 더해지는 와중이다. 민생경제를 살리라는 게 총선의 민의였다. 이제, 한강의 기적을 넘어 복지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위한 조세구조개혁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역사의 평가 앞에서 대통령도 살고 여야도 상생하는 길, 결국 지난 대선 때 공약한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뿐이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ㆍ사회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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