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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ㆍ베테랑들을 외면하는 K리그

입력
2016.04.2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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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단체 회식 날이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감독이 옆에 오더니 ‘이제 그만 해라’고 하더라. 은퇴하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국가대표 출신에 한 팀에서 청춘을 다 바친 선수를 어떻게 그런 식으로 내보낼 수 있나.”

십 수 년 전의 일이지만 A감독은 앙금이 다 풀리지 않은 듯했다.

한국에서 늦은 나이까지 현역으로 뛴 선수치고 ‘아름답게 은퇴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프로축구 필드 플레이어 역대 최다 출전(501경기), 최고령 득점(39세5개월27일)의 주인공 김기동(45) 올림픽대표팀 코치는 “선수 본인과 주변 생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선수는 체력, 경기력에 문제 없다지만 주위에서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은퇴 시기에는 이런 부분을 잘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좀 더 뛰고 싶은’ 선수와 ‘이제 그만 했으면 싶은’ 구단(혹은 감독)의 생각 차이를 고려해도 K리그는 노장에게 가혹한 편이다.

1973년생으로 불혹까지 뛰다가 2014년 5월 은퇴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라이언 긱스(웨일스), 1976년생으로 안정환과 동갑이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그라운드를 누비는 프란체스코 토티(이탈리아)가 있는 유럽, 최고령 출전 기록을 연일 경신 중인 미우라 가즈요시(49ㆍ요코하마FC) 그리고 미우라와 동갑으로 JFL(실업리그)에서 활약 중인 나카야마 마사시(아술 클라로 누마즈)가 환영 받는 이웃 일본과도 대비된다. 2002 한일월드컵 때 뛰어난 수비력으로 ‘진공청소기’로 이름을 날린 김남일(39)은 올 초까지 새 팀을 물색하다가 여의치 않자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레전드 골키퍼 김병지(46)는 현역 연장에 강한 의지를 보이지만 아직 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한 김남일. 대한축구협회 제공
최근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한 김남일.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 에이전트는 “나이 많은 선수가 (경기를 못 뛰고) 벤치에 있으면 팀 분위기를 해친다는 생각이 K리그에는 아직 팽배하다”고 했다. 노장들은 연봉 계약이나 이적 협상 때마다 편견의 벽과 싸워야 한다. 젊은 사령탑이 크게 늘어난 것도 베테랑의 입지가 좁아진 원인이다. 클래식 감독 12명 중 9명이 40대다. 유럽과 일본은 백발이 성성한 노(老) 코치가 한참 아래 연배 감독을 보좌하는 일이 흔하다. 반면 K리그는 감독이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코치를 영입해도 화제가 될 정도니 나이 많은 선수를 품기는 더 쉽지 않다.

또한 유럽은 물론 일본 J리그만 해도 디비전 시스템(1부 리그~하부리그)이 잘 갖춰져 있지만 K리그는 부실한 편이라 베테랑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K리그 역대 통산 최다 득점(183골) 주인공으로 골을 넣을 때마다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이동국(37ㆍ전북 현대)은 몇 년 전부터 “체력이 괜찮냐” “버티는 비결이 뭐냐” “은퇴는 언제 할 거냐”는 질문을 늘 달고 살았다. 그가 작년 최우수선수(MVP) 수상 소감에서 “내년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겠다”고 한 말에서도 베테랑의 비애가 느껴진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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