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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로브스터가 된 사람

입력
2016.04.20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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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줄거리지만, 영화 ‘가위손’은 특별한 여운을 남긴다. 손을 가위처럼 쓰는 주인공은 애초 양배추를 다지는 기계였다. 그런데 어느 날 괴짜 발명가가 이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고, 에드워드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발명가는 그에게 사람의 정서까지 심어주지만, 그의 손을 만들다 급작스럽게 죽어버린다. 에드워드는 양배추를 다지던 칼들을 그대로 단 채, 인간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가 가위손으로 손질한 정원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의 손길이 지나간 정원은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났고, 그의 섬세한 가위질은 여인들의 머리 손질에도 빛을 발했다. 그러나 인간에게 유용했던 가위손이 인간들의 욕망과 뒤섞이면서, 에드워드는 사회에 무질서를 야기하는 위험한 존재가 되고 만다.

이 영화는 베르그송의 철학을 통해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은 이성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지만, 본능이 발달한 짐승은 몸 자체를 도구로 쓴다. 그런 눈으로 보면, 손을 가위로 쓰는 에드워드는 사람이 아니라 로브스터에 가깝다. 죄 없는 그가 여인을 겁탈하고 도둑질을 일삼는 짐승으로 낙인 찍힌 까닭이다. 결국 그는 마을에서 쫓겨나 애초 그가 속했던 자연으로 추방된다. 그를 사랑한 여인이 회상하는 형식의 영화여서 곧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소개되지만, 영화 밑바닥에는 자연을 무질서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서양의 이성 중심 사고가 숨어 있다.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다른 생명은 자신의 몸을 디자인하고 인간은 (자기 밖의) 세상을 디자인한다. 이 지점에서 디자인과 예술이 갈라진다. 체조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양학선 선수는 특별하다. 그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전까지, 도마 국제경기에서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를 도마의 신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도움닫기를 해서 도마를 치고 오르며 비트는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벼운 몸과 딴딴한 근육,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몸뚱이를 도마에 최적화시켰다. 이는 다른 생명이 자신의 몸을 디자인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그러니까 그의 체조는 예술이라기보다 디자인에 가깝다. 자연에서 디자인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북극곰이 그렇고 로브스터가 그렇다. 양학선의 고백은 어떤가.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부모님께 안전하고 따뜻한 집을 지어드리고 싶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요즘 유행하는 성형수술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다른 생명이 그런 것처럼 스스로를 도구화하여 디자인을 육화(肉化)시키고 있다. 성형의 영역도 넓어진다. 눈과 코에서 턱으로 다시 가슴과 허리까지. 한때는 여인들만 그러더니, 요즘은 사내들도 그런다.

우리가 성형에 매달리는 이유가 어쩌면 위험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몸을 디자인하는 생명처럼 스스로를 디자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사회가 험악해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가위손처럼 사회 밖으로 쫓겨날까 불안에 떠는 것은 아닐까. 아름답기를 강요받고, 취업을 위해 얼굴까지 바꿔야 하는 삶.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성에서 본능으로의 회귀라고 할 만하다.

무한경쟁의 도시는 과거 자연만큼이나 익숙하고 또 위험하다. 사회에서 내몰린 어느 젊은이는 옥탑 방에 유서를 남기고 투신했고, 어느 고시원에선 다른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쉽게 잊히는 일상이 되어버린 죽음, 죽음들. 며칠 전 또 누군가 철로로 뛰어들었다. 사람들은 때로 경쟁이 인간 본성이라고 믿기도 하지만, 철학자 푸코에게 경쟁은 신자유주의 통치가 만든 시스템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패자를 만들고, 극소수의 승자만을 남기는. 정부의 노동관계 법안은 정확하게 여기에 닿아 있다. 이제 새로운 가치를 찾아 나서야 할 때다.

늦은 밤 편의점에서 마주친 서른 전후, 젊은 알바의 눈길.

신자유주의! 나는 너를 증오한다!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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