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어제부터 업체 관계자를 소환하는 등 수사를 본격화했다. 이로써 5년 넘게 이어진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검찰 수사의 초점은 가습기 살균제 업체들의 고의나 과실 여부 규명이다. 제품 출시 전에 인체 유해성을 명확하게 인식했다면 살인죄를, 어느 정도 의식할 수 있었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모든 의혹을 낱낱이 밝혀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검찰은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수사를 통해 대표적 살균제 제조업체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조작ㆍ은폐 정황을 확보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사회문제로 번지자 대학연구소에 의뢰한 실험결과를 조작하려 한 단서가 포착됐고, 이 과정에서 교수에게 돈을 건넨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 2월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에는 살균제 사용 부작용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의 인터넷 게시글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만일 사실이라면 유해 제품을 만든 것 이상으로 공분을 불러 일으킬 사안이어서 철저한 규명이 요구된다.
관련 업체들의 지속적 은폐와 조작에는 정부와 검찰의 책임도 적지 않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의혹이 불거지자 피해자들은 검찰에 옥시 등을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1년 동안 기소중지하고 이후에도 검사 한 명에게 사건을 맡기는 등 사실상 방치해왔다. 그 동안 판매 중단 외에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정부의 소극적 대응도 비판 받아 마땅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사상 최악의 제조물 피해 사건’으로 커졌지만 정부는 5년이 넘도록 피해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단체는 가습기 살균제가 등장한 1994년부터 따지면 크든 작든 피해자는 27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국가의 명백한 책임 방기다.
업체들의 행태는 말 그대로 후안무치다. 롯데마트는 제조ㆍ유통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공식 사과하고 보상안을 발표했다. 5년이 다 되도록 모른 체하다 고개를 숙인 것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반성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려는 것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옥시 등 다른 가습기 업체들은 대책 마련은커녕 눈치만 보고 있다. 최소한의 기업윤리도 찾아볼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사망한 사람들 외에도 수많은 피해자들이 지금도 폐질환으로 투병하고 있다. 정부와 검찰은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주고 합당한 보상을 받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끔찍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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