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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4) ‘거대 FTA’(Mega-FTA) 시대, 한국 경제의 위기이자 기회

입력
2016.04.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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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1960년대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의 발전 양상은 대표적인 ‘수출 주도형’이었다. 따라서 안정적인 해외시장 접근 기회의 확보는 곧 한국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이었다. 이런 조건은 과거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에서부터 시작해 최근의 ‘다자간 무역체제’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유지돼 왔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마침 우리의 염원대로 무역 자유화 확대하기 위해 2001년 도하개발아젠다(DDA)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최근까지 15년이 되도록 가시적 성과를 낳지 못한 채 “가사상태에 빠졌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에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지역무역협정(Regional Trade AgreementㆍRTA)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배타적 시장개방협정을 통해 해외시장 접근기회를 확보하겠다는 의도였다. 그 결과, 2016년 2월 현재 WTO에 등록된 RTA는 무려 271건에 달한다.

우리 입장에서도 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는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지역 무역협정 분야에서 너무 뒤쳐졌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거대 선진 시장과의 자유무역협정(FTA)체결을 목표로 동시다발적 FTA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단 10여년 만에 49개국과 14건의 FTA를 발효시켰으며, 협상 타결된 FTA가 2건, 협상이 진행 중인 FTA도 4건이나 된다. 아시아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FTA를 통한 특혜 시장 접근 기회를 많이 확보한 나라가 된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과 EU등 거대 선진 시장과 FTA를 체결한 아시아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또, 거대 중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도 아세안(ASEAN) 국가들을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과거 한국 경제의 압축 성장성을 떠올릴 만큼 단기간에 많은 성과를 올린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거대 FTA’(mega-FTA)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어렵사리 이뤄 낸 우리나라의 전략적 우위가 상실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거대 FTA체제의 정체와 영향

최근까지는 양자간 FTA가 지역 무역협정의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2016년 2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되면서, 바야흐로 지역경제통합의 새로운 형태인 거대 FTA시대가 시작됐다. 거대 FTA는 세계무역체제와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의 다수 회원국으로 구성된다. 무역 장벽의 획기적인 철폐는 물론, 무역 규범 및 경제 규범을 체계적으로 도입해 역내 경제뿐만 아니라 역외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거대 FTA로는 이미 타결된 TPP 외에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 (TTIP) 등이 꼽힌다.

거대 FTA중 경제 규모면으로 봤을 때,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가 가장 크다. FTAAP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21개 회원국이 모두 참가하는 초대형 FTA로 세계 경제의 57%, 세계 무역의 48.8%를 차지하고 있다. FTAAP에 대한 논의는 2014년 베이징 APEC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주도로 진행됐다. TPP 회원국 12개국을 모두 포함해 APEC차원에서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2014년부터 그 논의가 시작된 만큼, 그 실질적인 협상타결 및 출범 시점은 아직 요원하다. FTAAP는 특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TPP를 견제하려는 중국의 의도도 반영돼 있어 미국의 지지가 높지 않다.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는 FTAAP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미국과 EU 28개국간의 자유무역협정으로 세계경제의 46.5%, 세계무역량의 42.9%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거대 FTA와는 달리 선진국으로만 구성되어 있기에 비교적 쉽게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농산품 교역, 기술ㆍ안전 표준 문제 등 제도적인 조율 과정이 쉽지 않아, 단기간에 타결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아시아ㆍ태평양지역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16개국으로 구성된 거대 FTA다. 전세계 인구의 44.9%, 세계 GDP의 28.3%, 세계 무역량의 27%를 차지한다. 16개 회원국 중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브루나이, 호주, 뉴질랜드는 TPP에도 가입되어 있으며, 중국, 한국,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가 협상에 참가하고 있다. RCEP은 2013년부터 협상을 시작해 2016년 2월 11차 공식협상(브루나이)까지 진행된 상태다. 올해 안으로 협상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협상에 참가하는 16개국의 경제 발전 수준과 개방 정도에 큰 차이가 있어, 높은 수준의 개방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한 TPP협상의 타결에 위협을 느낀 중국이 RCEP 타결에 온 힘을 쏟아 붓고 있어 올해 안에 상당한 진전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협상이 타결된 거대 FTA가 본격 발효되면 우리나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는 TPP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향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콜롬비아 등과 함께 추가 가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TPP에 가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TPP가 발효되면, 한국 경제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첫째 현재 우리나라는 FTA 선진국으로 특혜적 시장 접근 기회를 갖고 있는데, TPP가 발효되면서 일본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의 TPP회원국과 이 기회를 공유하면서 기존의 ‘전략적 우위’ 상태를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TPP회원국에게만 적용되는 ‘통합 원산지 규정’에서 한국이 제외되면 우리 기업들이 겪게 될 불이익이 크다. 세계은행 발표(2016년 1월)에 따르면, TPP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수출은 1.6%감소하고 GDP도 0.3% 감소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TPP가 발효되면 최대 수혜국은 일본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일본은 이번 TPP발효와 함께 대대적인 시장 접근 기회를 가지면서 GDP가 최대 2.5%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 역시 주요 수혜국으로 GDP가 최대 8.1%의 증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익의 절대규모는 일본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러한 추정치는 회원국간 비관세 장벽 철폐 효과가 극대화 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이뤄졌기에 다소 과대평가된 면도 있다.

우리나라가 지난 14건의 FTA체결 경험에서 터득했듯이 FTA체결이 기계적으로 보장해주는 이익은 아무 것도 없다. 이는 멕시코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멕시코는 FTA 체결 건수, FTA로 확보한 경제 영토 등에서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최근 ‘FTA 모라토리엄’(FTA 협상중단)을 선언하고 모든 양자간 협상을 중단했다. FTA가 오히려 멕시코의 산업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즉 자국 기업의 가격ㆍ품질 경쟁력을 개선할 수 있는 산업 정책이 동반될 때, FTA는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열린 거대 FTA체제를 위한 디딤돌

TPP 등 지역무역협정이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배타적 성격을 최소화하고 참가를 희망하는 국가들을 포용하는 ‘열린 협정’이 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TPP는 단시일 내에 ‘열린 FTA’가 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가 ‘열린 협정’으로 경제협력체를 주도해 나가는 것은 큰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특히 오는 5월 서울에서 열리는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 협력포럼(FEALAC)은 장기적으로 ‘열린 거대 FTA’를 촉진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FEALAC은 아시아 16개국과 중남미 20개국 등 총 36개국으로 구성된 메머드급 협력체다. 특히 한국은 FEALAC 사이버사무국을 유치하는 등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FEALAC을 통해 기존의 TPP-RCEP간 전략적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아시아ㆍ중남미 국가들의 개방적 상생협력체제를 이끌 수 있다. FEALAC에 대한 더 큰 관심과 전략적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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