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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피폭 민감한 당신, ‘납’유출은?

입력
2016.04.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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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노후 시 벽 균열 생겨 납 유출…화재 시 붕괴위험

개원가 안전 사각지대… 환자ㆍ의사 입는 ‘납치마’도 문제

의료시설 관련 납 규제 전무…“의료기관 납 사용 유무 알려야”

국내 의료기관들은 납(pb)을 주 성분으로 한 차폐시설을 설치하고 있지만 노후화되면 납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일반건물을 사용하는 병원에서 납 유출 위험성이 높아 관련 규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의료기관들은 납(pb)을 주 성분으로 한 차폐시설을 설치하고 있지만 노후화되면 납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일반건물을 사용하는 병원에서 납 유출 위험성이 높아 관련 규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병원에 가면 기념 촬영하듯 찍는 것이 X선(X-Ray)촬영이다. 엑스레이로 병변이 확인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다. 이들 장비는 방사선을 발생시켜 다양한 질환을 진단한다.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은 “병원에서 가장 흔히 촬영하는 단순 흉부 방사선의 경우, 촬영 시 노출되는 방사선 조사량은 0.1mSv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약 10일간 노출되는 정도 미미한 양이라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엑스레이와 CT 등 X선을 이용한 검사로 인한 방사선 노출과 위험보다 검사 시행으로 얻게 되는 이득이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 장비 촬영 시 발생한 방사선이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된 ‘차폐(遮蔽)’시설로 눈을 돌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방사선 장비가 설치된 구역은 방사선 피폭위험을 막기 위해 차폐시설이 들어선다. 국내 의료기관의 방사선 차폐시설의 주 재료는 중금속인 ‘납(pb)’이 사용되고 있다. 병원 촬영실 벽, 바닥, 출입문 모두 납이 들어있다.

차폐벽, 불 나면 납 성분 녹아 붕괴 위험

의료기관들이 납을 선호하는 이유는 경제적이고, 가공성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최근 신축병원을 짓고 있는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납을 이용해 차폐막을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검토자체를 하지 않았다”면서 “무연보드 등 친환경 소재제품은 납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방사선사는 “30년간 방사선사로 일하면서 납 말고 다른 소재로 차폐시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방사선 촬영 시 발생하는 방사선 피폭보다 납 유출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설이 노후화 되면 언제든지 납 유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선칠 계명대 의대 의용공학과 교수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시설이 낙후돼 납으로 이뤄진 차폐벽에 균열이 생기면 납이 유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용민 고려대 의대 환경의학연구소 교수는 “차폐벽에 균열이 생겨 납이 유출되면 공기 중에 떠다니다 호흡기를 통해 체내에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화재라도 나면 치명적이다. 납 성분은 불연성 성질을 갖고 있지만 약 400도부터 천천히 녹기 시작해 550도에 이르면 액체상태가 된다. 이때 유독가스가 발생해 인체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차폐벽이 붕괴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화재가 발생하면 납 성분이 녹아내려 쉽게 벽이 무너질 수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납을 대처할 수 있는 방어용 건축자재가 전혀 없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높은 농도의 납에 노출되면 현기증, 구토, 체중감소 등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방사선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정형외과, 치과, 산부인과 등 개원가에서 납 유출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들 의료기관은 기존 건물을 임대해 쓰기 때문에 구조변경이 어려워 대부분 납판을 벽에 붙여 차폐시설을 만드는데, 건물에 병원뿐만 아니라 식당 등 다양한 업종이 함께 사용하고 있어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화재발생시 유독가스 발생과 함께 차폐벽이 무너지는 2차 피해로 인해 건물 내 있는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정기적으로 차폐벽 관리를 하지 않는 병원에서 납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병원 폐업, 이전 시 차폐벽 철거도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관련 업체 관계자는 “폐기물 업체 인부들이 보호 장치 없이 차폐벽을 철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납은 특정관리폐기물인데 일반폐기물과 함께 처리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방사선 차폐시설 주 성분인 납. 게티이미지뱅크
방사선 차폐시설 주 성분인 납. 게티이미지뱅크

■ 납 위험성

‘납치마’ 도 오래 쓰면 납 유출 우려

전문가들은 차폐벽과 함께 납이 주 성분인 방사선 차폐앞치마 등 의료용품에서도 납이 유출될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병원에서는 방사선 차폐를 위해 환자, 보호자, 방사선사, 의료인들은 납 방호복의 일종인 ‘에이프런(Apron)’을 착용한다. 조 교수는 “납으로 만들어진 방사선 차폐앞치마를 오래 사용하면 균열이 생겨 외부로 납이 유출될 수 있다”면서 “일부 병원에서 비용절감을 이유로 방사선 차폐앞치마 교체를 미루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납중독을 막고 안전성을 높이려면 의료기관의 납 사용 여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현재 국내 의료시설에 쓰고 있는 납에 대한 규제가 전무해 환자는 물론 의료기관도 납 위험성을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미 미국 등 선진국처럼 납 사용을 규제하고 있고, 사용할 때는 반드시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납을 대처할 친환경 소재가 개발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현재 국내에서는 2013년부터 일본에서 바륨을 주 소재로 한 무연보드가 수입되고 있지만 납보다 비싸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은 “환자는 물론 의료진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납 대신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차폐시설을 만들 필요가 있다”면서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고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납 대신 친환경소재를 사용해 차폐벽을 설치한 의료기관에 ‘친환경인증’해주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일반인들이 방사선 피폭에는 민감하면서 정작 납 사용엔 둔감하다”면서 “납 사용에 따른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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