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자전거를 저렇게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곳에서 타라고요? 절대 못 탑니다.”
서울시청 인근에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이용하던 김모(45)씨는 “인도(人道)에서 자전거를 타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두 자녀와 함께 덕수궁 주변을 돌고 있던 그는 “거칠게 운행하는 버스와 택시를 보면 도로에서 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서 인도에서 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임시공휴일이던 지난 13일 서울시청과 광화문 주변은 김씨 가족처럼 나들이 나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따릉이 이용객들도 인도를 걷는 인파에 섞여 있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차마(車馬)로 분류되기 때문에 인도로 통행해서는 안 된다(어린이, 노인, 그 밖에 행정자치부령으로 정하는 신체장애인이 자전거를 운전하는 경우는 제외). 법대로라면 따릉이는 인도가 아닌 도로 가장자리 차로에 설치된 자전거 우선도로에서 타야 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따릉이 사업을 시작하며 자전거 우선도로를 설치해 자전거를 인도가 아닌 도로에서 타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따릉이 이용자들은 대부분 인도를 이용한다. 법을 지켰다간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기 때문이다.
청계광장에서 따릉이를 이용하던 심연지(24)씨는 “자전거 우선도로가 뭔지 몰랐다”며 “인도 주행이 훨씬 안전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광화문네거리에서 만난 윤해영(28)씨는 “따릉이 디자인이 도로로 다니기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며 “인도에서 타는 것이 위법인지 알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에서 타진 않겠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시청과 명동 일대에서 따릉이를 이용해 온 정택근(42)씨는 “자동차와 함께 다니는 자전거 우선도로를 이용하려면 헬멧 등 안전장비를 갖추고 다녀야 하는데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며 “인도가 아닌 도로를 이용하려 해도 자동차가 자전거에 양보해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여기저기 주차된 차들로 통행이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따릉이 이용자 대부분이 안전을 이유로 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따릉이 주변 환경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따릉이 대여소 위주로 설정된 자전거 우선도로는 도로에 자전거 표시만 해놓았을 뿐 실질적으로 자전거 이용자를 보호할 만한 장치나 설비들이 없다. 특히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시청, 광화문 주변 자전거 우선도로의 경우 대형관광버스의 주차장으로 활용돼 자전거 통행이 매우 위험하다.
또 곳곳에 버스정류장과 택시 승강장이 위치해 자전거와 수시로 동선이 겹치는 것도 자전거 이용자의 도로 이용을 어렵게 한다. 또 자전거도로가 자전거 우선도로처럼 차로에 설치된 곳이 있는가 하면 보행자와 함께 다니는 인도에 설치된 경우도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 도로와 인도를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전거 우선도로의 존재나 이용방법을 아는 운전자도 드물다. 자전거 우선도로에서는 자전거 이용자가 우선 통행권을 갖는다. 하지만 자동차 중심 교통문화가 팽배한 상황에서 자전거 통행을 배려하는 운전자 찾기는 매우 어렵다. 자전거는 도로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운전자도 많다. 자전거가 보호받아야 할 약자가 아닌 운전에 방해되는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는 지난해 9월 시범운행을 시작해 현재까지 대여 횟수가 24만여 건에 이른다. 서비스 초기 단계치곤 큰 인기다. 서울시는 7월부터 대여소를 450개로 확대하고 자전거도 5,600대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자전거 이용자의 실질적인 안전이 고려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전거와 대여소를 늘린다면 수많은 범법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인도에서 보행자 눈치 보며 따릉이를 타기 원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따릉이 이용자들은 마음 놓고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싶다. 자전거 우선도로처럼 ‘무늬만 자전거도로’에선 안전을 보장받기 힘들다. 따릉이가 도로교통법을 준수하며 운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서울시가 그리는 자전거 도시에 한 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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