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일상 속 공포
무섭지만 재미있게
긴장감 넘치는 삽화로
고릴라박스 출판사는 구스범스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인 ‘목각 인형의 웃음소리’로 어린이 책 종합 출판사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놀랍게도 어린이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무서운데 자꾸 뒤가 궁금하다’‘밤에 혼자 못 자겠다’ 같은 서평이 이어졌다. 공포 책에 이만한 찬사가 어디 있으랴. 그제야 출간 준비할 때의 조바심이 사르르 녹아 내렸다.
어린이 공포문학인 이 책은 유난히 많은 우려 속에 만들어졌다. 기존 공포 책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하얀 소복의 처녀귀신, 피투성이 흡혈귀가 주로 등장하는 어린이 공포 책의 표지는 마치 ‘불량 식품’같은 이미지를 주곤 했다. 그러니 부모와 교사에게 금서 취급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구스범스’ 검토 후에 ‘이 책은 사랑 받겠구나’ 싶었다. 일단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촘촘한 복선과 반전에 편집자라는 본분을 잊은 채 독자가 되고 말았다. 4억 권 이상 팔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어린이 책 2위’라는 타이틀을 얻은 책다웠다. 게다가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공포를 끄집어낸 점은 최고의 강점이었다. 실생활과 동떨어진 전설 속 몬스터가 느닷없이 겁을 주는 공포 책과는 차원이 달랐다.
1권의 주인공은 쌍둥이 자매로 방과 물건들을 나누어 써야만 하는 사이다. 어느 날 쌍둥이 언니가 손에 끼우는 복화술 인형을 줍는데 동생도 그 인형을 탐낸다. 둘은 인형을 놓고 싸우다가 그만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그런데 복화술 인형이 수상하다. 동생은 자매의 갈등을 조종하는 것 같은 인형의 낌새를 알아챈다. 캄캄한 밤 달빛에 비친 인형이 평소와 달리 섬뜩해 보이는 순간, 형제자매 간의 짜증나는 경쟁. 어린이라면 십분 공감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스범스’는 어린이의 감추고 싶은 두려움까지 잘 아는 이야기였다.
텍스트의 장점을 발견하고 나니 편집의 방향이 보였다. 원서에는 없었던 일러스트를 첨가해 긴장감이 감도는 공포물의 분위기를 강화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장면은 보여 주지 않았다. 독자가 상상 속 공포를 충분히 즐기게 하려는 의도였다. 표지는 공포 책의 선입견을 깨뜨리는 동시에 어린이 눈높이에 알맞은 무서움과 재미를 담고 있어야 했다. 참고할 만한 견본이 마땅치 않아 머릿속이 꽤나 시끄러웠다. 담당 디자이너는 표지 시안만 100개라며 고통을 토로했다. 결국 어린이들의 설문 조사까지 거쳐 지금의 표지가 완성되었다.
그 후 1년 8개월. 구스범스 시리즈 19권에 ‘호러특급’이라는 특별 판 4권까지 포함해 총 23권을 출간했다. 권 수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이 시리즈를 놀이처럼 즐기고 있음을 느낀다. 놀이처럼 보는 책. 앞으로 고릴라박스가 펴낼 책은 그런 책이다. 어른들이 권장하는 책 말고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서 즐기는 책, 친구끼리 돌려 보고 키득키득 수다 떨 수 있는 그런 책을 계속 만들어 가는 게 고릴라박스가 갈 길이다.
전지선 고릴라박스 기획개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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