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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가 ‘스포테이너’ ‘해설위원’ ‘딸바보’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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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가 ‘스포테이너’ ‘해설위원’ ‘딸바보’로 사는 법

입력
2016.04.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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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강남의 한 스포츠펍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천수. 윤태석 기자
8일 서울 강남의 한 스포츠펍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천수. 윤태석 기자

천수(天秀).

하늘이 내린 빼어난 재능.

이름 그대로 이천수(35)는 ‘축구 천재’ 였다. 그와 함께 고교 무대를 누빈 또래 선수들은 “부평고의 이천수는 차원이 달랐다”고 입을 모은다. 울산 현대 감독 시절 이천수를 지도했던 김정남(73) OB축구회장은 지금도 “천수만큼 축구 잘 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천수는 만 스물한 살에 2002 한일월드컵 대표에 뽑혀 4강 신화에 힘을 보탰고 2006 독일월드컵 토고와 조별리그에서는 그림 같은 프리킥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라운드 안팎에서 잦은 기행으로 구설에 올라 ‘풍운아’로 불렸다.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도 전설로 남지는 못했다. 작년 11월 은퇴 후 지난달부터 JTBC 축구 해설위원으로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한 그를 8일 서울 강남의 한 스포츠펍에서 만났다.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이천수. 윤태석 기자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이천수. 윤태석 기자

금요일 늦은 오후라 펍은 한산했다.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자주 오는 곳이냐”고 묻자 “좀 전에 여기서 사전인터뷰(방송 출연 전 작가들과 하는 인터뷰)를 했다”고 말했다. 요즘 인기 높은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 답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천수다. 주말에 2경기씩 K리그 중계를 하고 주중에는 예능에 출연한다. 그는 “1주일에 겨우 하루 쉰다”면서도 피곤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운동선수 출신들이 예능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천수는 개의치 않았다. “난 축구인이다. 평생 축구를 했다. (예능 때문에) 축구와 멀어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2008년 이후 대표팀에 뽑힌 적이 없어 요즘 어린 친구들은 나를 잘 모르는데 예능 출연 이후 많이 알아본다”며 “인지도를 높이려고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하는 건 아니지만 중계 전에 팬들이 사인 요청하고 사진 찍자고 하면 기운이 솟는다. 우리는 선수 때나 지금이나 인기로 먹고 사는 사람들 아니냐”고 웃었다.

해설위원으로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한 이천수. JTBC3 FOX Sports 제공
해설위원으로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한 이천수. JTBC3 FOX Sports 제공

이천수는 인터뷰 도중 자주 K리그의 사명감을 말했다. JTBC 축구 중계 총괄 김중석 PD는 “이 위원은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 K리그가 잘 되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고 전했다.

이천수는 천부적인 재능에 비해 노력이 부족했던 선수로 알려졌지만 사실과 다르다. 키(174cm)가 작은 단점을 만회하기 위해 밤마다 공동묘지를 뛰며 체력과 담력을 키운 일화는 유명하다. 방송해설 준비도 허투루 안 한다. 김 PD는 “경기 전 감독 이야기를 꼼꼼히 듣고 친한 선수들을 통해 소소한 것까지 챙겨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주려고 노력 한다”고 엄지를 들었다.

선수 시절 당돌함의 아이콘이었던 이천수. 그 때처럼 화끈한 해설을 원하는 팬들이 많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최대한 선수 입장에서 팬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려고 한다”고 했다. 김 PD는 “이 위원이 과거 경솔했던 발언을 많이 후회하더라. 일단 겸허한 자세로 가기로 했다. 좀 더 경험이 쌓여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야가 생기면 그만의 끼를 살리는 해설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때 이영표(39)와 안정환(40), 송종국(37), 차두리(36) 등 2002 월드컵 4강 주역들이 마이크를 잡고 경쟁해 큰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이천수가 뛰어들었다. 그는 “영표 형의 분석, 정환 형의 위트를 적절히 섞어 전문성과 재미, 둘 다 안 놓치는 해설을 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늦게 출발한 ‘초짜’지만 기가 죽지 않았다. “다른 형(해설위원)들과 달리 나는 올해 매주 2경기씩 K리그 중계를 한다. 확실히 트레이닝이 된 나를 당할 수 없을 것이다”고 자신했다.

이천수와 딸 주은양의 다정한 모습. 이천수 인스타그램 캡처
이천수와 딸 주은양의 다정한 모습. 이천수 인스타그램 캡처

해설과 예능프로그램 일정이 없는 날의 이천수는 ‘딸바보’다. 2013년 6월 태어나 올해 네 살인 주은 양 이야기를 하며 그는 잠시 울컥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달 24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열린 레바논과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 홈경기에서 이천수의 국가대표 은퇴식을 마련했다. 그는 처음으로 딸의 손을 잡고 함께 그라운드로 입장했다.

“주은이가 아빠가 축구 선수였던 건 안다. 하지만 손을 잡고 함께 운동장에 들어간 적이 없다. 예전에는 너무 어려서 못했고 데려갈 만한 나이가 되니 내가 은퇴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그 소원을 풀었다.”

선수로 뛸 때 제대로 육아에 참여하지 못해 늘 미안했던 이천수는 쉬는 날이면 늘 딸과 붙어있다. 어린이 집에 데려다 주고 맛있는 음식도 척척 해내는 아빠를 보며 “이제는 주은이가 50점 정도 주는 것 같다”고 그는 웃음 지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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