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이대호(34)가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평생 기억될 만한 대타 끝내기 홈런을 쳤다.
이대호는 1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세이프코필드에서 열린 텍사스와 홈 경기에 2-2로 맞선 연장 10회말 2사 1루에서 아담 린드(33) 타석 때 대타로 나가 끝내기 2점포를 터트렸다.
이대호는 메이저리그 최고 왼손 불펜 요원으로 손꼽히는 제이크 디크먼(30)의 시속 156㎞짜리 강속구를 힘껏 잡아 당겨 왼쪽 담장을 넘기는 2점 아치를 그렸다. 이대호의 메이저리그 2호 홈런이자 개인 첫 대타 끝내기 홈런, 팀의 5연패를 끊는 홈런이었다.
또 시애틀에서 데뷔 시즌에 대타 끝내기 홈런을 친 1호 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앞선 1986년 9월 켄 펠프스가 디트로이트전에서, 켄드리스 모랄레스가 2013년 6월 오클랜드를 상대로 대타 끝내기 홈런을 친 적이 있지만 신인으로는 이대호가 처음이다.
스포츠 전문매체 ESPN에 따르면 만 33세 이대호는 1950년 당시 만 35세였던 루크 이스터(클리블랜드) 이후 최고령 신인 끝내기 홈런 타자가 됐다. 한국인 선수로는 2005년 LA 다저스 시절 최희섭(37ㆍ은퇴)과 2011년 클리블랜드 시절과 2013년 신시내티에서 뛰었던 추신수(34ㆍ텍사스) 이후 세 번째다. 하지만 연장 끝내기 홈런은 역대 한국인 타자를 통틀어 이대호가 처음이다.
이대호가 연일 드라마를 쓰고 있다. 그는 한국과 일본야구를 평정하고 선수로서 마지막 목표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정상에서 밑바닥으로 내려가 다시 시작한 그는 스프링캠프 초청선수 자격으로 생존 경쟁에 뛰어 들어 전쟁 같았던 25인 개막 로스터에 진입했다. 또 지난 9일 오클랜드와 홈 개막전에 선발 출전해 빅리그 데뷔 홈런을 가동했다. 13일 텍사스전에는 두 번째 선발 출전해 안타를 추가했고, 14일 대타로 강력한 한방을 쳤다. 이로써 이대호의 타율은 0.231(13타수 3안타)로 올랐다. 이 중 2안타가 홈런이다.
이대호의 대타 끝내기 홈런은 ‘강속구에 약하다’는 우려를 완벽히 날렸다. 이대호는 디크먼을 맞아 0B-2S(노볼-투스트라이크)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3구째 시속 156㎞의 빠른 공에 제대로 반응했다. 상대 투수 디크먼은 경기 후 “이대호가 치기 좋은 코스로 공이 들어갔다”고 아쉬워했고, 이대호는 “빠른 공을 던질 것이라고 예상해 정확하게 치려고 했는데 배트 중심에 맞아 홈런이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린드 대신 타석에 들어서 친 홈런이라 더 의미가 컸다. 이대호는 올 시즌 주전 1루수 린드의 플래툰(하나의 포지션에 2명 이상의 선수를 두어 운영하는 방식) 자원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대호가 몇 번 오지 않는 기회마다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리는 반면 린드는 7경기에서 21타수 2안타, 8삼진의 부진에 빠져 있다. 이대호는 이날 홈런으로 린드와 대등한 팀 내 입지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스콧 서비스(50) 시애틀 감독 역시 만족감을 나타냈다. 서비스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이대호를 처음 봤을 때 과연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에 대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있었다”고 털어놓은 뒤 “이대호가 빠른 공 적응력을 증명했다”고 박수를 보냈다.
현지 반응도 뜨거웠다. 시애틀 지역지 시애틀 타임스는 “이제 이대호는 (시애틀)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됐다”며 “팬과 미디어 종사자들은 33세의 루키가 가슴 높이로 들어오는 공을 왼쪽 담장 너머로 보내는 순간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통계 전문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의 칼럼니스트 제프 설리번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대호의 홈런 장면을 영상으로 올린 뒤 “나는 이들 아시아 선수가 미국의 파워 넘치는 패스트볼을 대처할 수 있을지 정말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한편 세인트루이스의 오승환(34)은 밀워키전 7회초에 등판해 1이닝을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로써 오승환은 무실점 경기를 ‘5’로 늘렸다. 볼티모어 외야수 김현수(28)는 보스턴전에 시즌 2번째 선발 출전해 2타수 무안타 2볼넷을 기록했다. 미네소타 박병호(30)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 결장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