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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 떠나는 빈 스컬리와 한국 선수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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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 떠나는 빈 스컬리와 한국 선수들의 추억

입력
2016.04.1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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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스컬리/사진=스컬리 트위터

지난 13일(한국시간)은 LA 다저스의 시즌 홈 개막전이었다. 마냥 설레고 즐거워야 했을 순간인데 TV 앞에 모여 앉은 LA 다저스 팬들은 서운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무려 67년간이나 다저스 경기를 틀면 나오던 '산 역사' 빈 스컬리의 목소리로 야구중계를 듣는 마지막 시즌 개막전이었기 때문이다.

야구 팬들 사이에서 '천상의 목소리'로 통하는 스컬리(89)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만의 예리하고 유창하며 특별했던 67년 중계 커리어를 마감하게 된다.

스컬리의 은퇴가 못내 아쉽다는 반응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건 16명의 손자와 2명의 증손자까지 둔 노인이지만 역대 가장 훌륭한 캐스터로 여전히 그 전성기에 있어서다. 비유하자면 스컬리의 퇴장은 베이브 루스의 생애 마지막 타석이나 무하마드 알리가 링에 한 라운드를 더 머무는 것과는 다르다.

아직 충분히 더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스컬리는 아름다운 끝맺음을 원했다. 이런 그가 섭섭하기도 하지만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스컬리에 이어 48년째 다저스를 중계하고 있는 찰리 스타이너는 "야구 중계를 예술로 승화시킨 역대 가장 훌륭했던 시인"이라고 떠나는 선배를 정의했다. 19년간의 성공적인 선수생활 뒤 은퇴해 지금은 23년째 다저스를 중계하는 릭 먼데이는 "우리는 다저스를 얘기할 때 재키 로빈슨, 샌디 쿠팩스, 길 호지스 등을 입에 올리곤 하지만 누구도 스컬리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스컬리는 미국 최대 일간지 USA투데이와 인터뷰에서 "한없이 겸손해질 뿐"이라며 "나는 리틀리그조차 뛸 수 없었던 뉴욕 거리의 가난한 꼬마에 불과했다. 유일하게 야구를 할 수 있던 건 학교를 파한 뒤 거리에서였다. 막대기와 테니스 공으로 맨홀을 베이스 삼아 매일 자정이 다 될 때까지 아이들과 어울려 야구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어릴 적엔 사실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현 샌프란시스코)의 광팬이었다"면서 "오후 2시 반에 학교를 마치고 1마일(약 1.61km)을 걸어 당시 폴로 그라운드에 가서 몰래 공짜로 자이언츠 경기를 보던 게 일과였다. 뉴욕에서 온 거리의 소년 이름을 딴 거리가 생긴다니 그저 굉장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시즌 홈 개막전에 하루 앞서 다저스가 스컬리의 은퇴를 기려 다저 스타디움으로 가는 길의 명칭을 '엘리시안 파크 애비뉴'에서 '빈 스컬리 애비뉴'로 변경하고 기념식을 거행한 데 따른 소감이다.

1950년 처음 중계 마이크를 잡은 스컬리는 한반도가 한국전쟁 휴전 협상으로 한창이던 1953년 만 25세로 월드시리즈를 중계한 역대 최연소 캐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1974년에는 행크 애런이 루스의 역대 최다홈런 경신하던 순간을 중계했고 2001년엔 배리 본즈(52)가 마크 맥과이어(53)를 넘어서는 단일시즌 최다 홈런 기록의 중계도 직접 했다. 그 외 67년간 25번의 월드시리즈, 3번의 퍼펙트게임, 20번의 노히트게임, 12번의 올스타전 중계 등으로 화려하게 빛났다.

스컬리하면 한국 선수들과 에피스도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 '챈호 팩'이라고 불리던 박찬호(43)의 발음을 '찬호 팍(미국인 발음상 'park'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이라고 비교적 정확하게 바로 잡은 주인공이 스컬리다. 그의 사전엔 대충하는 것이란 없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궁금하거나 애매한 게 있으면 참고 못 넘기는 성격이다. 1990년대 중반 고령의 전설적인 캐스터가 한낱 동양인 유망주에 불과하지 않던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를 라커룸으로 직접 찾아가 정확한 발음을 물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스컬리는 당시에 대해 "박찬호를 만나야 했다"며 "선수에게 직접 물어보면 추측할 필요가 없지 않나"고 웃었다.

류현진(29ㆍ다저스) 경기를 중계하면서 들은 가장 주옥 같았던 멘트도 다시금 떠오른다. 류현진의 데뷔 첫 해이던 지난 2013년 7월말 신시내티 레즈 소속이던 추신수(34)와 맞대결에서 '7이닝 2피안타 1피홈런 1실점 1볼넷 9탈삼진' 등의 눈부신 역투를 펼친 날이다.

이날 피칭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스컬리는 "우리는 한국어로 브릴리언트(brilliant: 훌륭한)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경기는 확실히 그 단어를 적용할 수 있겠다"고 표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1927년생인 스컬리는 오는 10월 3일 AT&T 파크에서 열릴 샌프란시스코전을 고별무대로 영원히 팬들 곁을 떠나게 된다. 온화한 성품과 훌륭한 인품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며 모든 이의 존경을 받는 그의 마지막 날을 전 세계 야구 팬들은 못내 맞이하기가 싫다.

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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