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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멀 때와 가까울 때

입력
2016.04.1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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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봄볕을 쬐며 윤동주동산 아랫길을 걷다가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훤칠한 청년이 목줄을 잡고 있는 개가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고, 우연히 만난 가족이 서로 반기는 줄 알았다. 같이 있는 키 큰 할아버지의 키 작은 친구가 청년에게 용돈을 주려고 해서 밀고 당기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둘은 서로 죽일 기세로 싸우고 있었다. 청년은, 뿔을 들이받는 수소처럼 머리를 한 곳으로 삐딱하게 가눈 채 으르렁거렸다. 키 큰 노인은, 큰 개는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 안 된다며 계속 고함쳤다. 노인이 너무도 딱해 보였다. 길을 막고 싸우는 그들을 보다 못해 나도 한 마디 하고 말았다. 개를 묶어서 데리고 다니는 것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인은 더욱 기세를 올려 “이 사람도 그렇게 말하잖아!”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청년이 어금니를 꽉 물고 씹듯이 말했다. “잘 들어봐, 병신아. 불법이 아니라고 하잖아!” 그때부터 청년의 입에서는 막말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기겁해서 달아나듯 그곳을 떠났다. 조금 걷다가 여전히 소동이 끝나지 않는 그곳에서 멈췄다 달려오는 택시를 세워 탔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택시기사도 귀가 닫히는 인간의 노화를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고 있었다. 상황을 그 지경으로 만든 청년의 잘못까지 거침없이 입 밖으로 지적한 사람은, 택시 기사와 나보다는 훨씬 젊은 옆자리 친구였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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