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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증언으로 대사를 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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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증언으로 대사를 엮다

입력
2016.04.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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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모티프로 한 연극 ‘내 아이에게’. 희생자 가족들의 증언을 대사로 만들었다. 서울연극협회 제공
세월호를 모티프로 한 연극 ‘내 아이에게’. 희생자 가족들의 증언을 대사로 만들었다. 서울연극협회 제공

“네 머리에 내려앉던 봄이 다시 왔다. 네가 없는 봄이 오고야 말았어.”

17년간 고이 자란 아이는 수학여행 중 배 침몰 사고로 바다에 가라 앉아 2년째 돌아오지 않는다. 참척의 고통을 어미는 탄원문으로, 기도문으로, 종국에는 시(詩)로 토해낸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가 17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초연하는 ‘내 아이에게’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 부모를 가상의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실종자 부모의 “뼈아픈 고통을 포장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한 작품은, 엄마 역의 김보경이 전체 대사의 9할을 하고 나머지 8명의 배우가 엄마의 말에 맞춰 장면을 재현하는 ‘코러스가 있는 모노드라마’다. 검은 옷의 배우들 앞에 유치한 줄무늬 후드티셔츠를 입고 나온 그녀는 “네가 보고 싶어 네 옷을 꺼내 입고 나가본다”며 첫 아이를 낳던 달뜬 새댁부터 참사 후 점점 초조해지는 중년의 부모 모습을 열연한다.

참사 후 두 번째 봄을 맞은 엄마의 시선에서 시작한 연극은 딸의 마지막 전화를 받던 그날로, 딸이 태어나던 17년 전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그 날’이 온다. “진도 체육관에 도착해 보니 현황판에 생존자 명단이 적혀 있었다. 너는 없었다” “아홉 집에서 돈을 걷어 사비를 내서 현장에 갔어. (…)현장은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팽목항에서처럼. 고무보트 몇 개 그냥 빙빙 돌고.” 닳고 닳을 정도로 들어 이제는 외워버린 증언들이 무대 위에서 한 사람의 사연으로 펼쳐진다.

극단 76단 출신의 연출가 하일호는 광화문, 팽목항, 국회에 모인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말을 모아 대사로 썼다. “시신이라도 부패하기 전에 찾으려는 현실이 서럽고 힘들다”는 엄마의 탄식에 대구지하철, 삼풍백화점 등 세월호 이전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위로가 덧붙여진다. “이것이 내 문제만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는 걸 이런 끔찍한 고통, 내 아이를 잃고 나서야 알게 된 거야.”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쏟아내는 어미의 간증은 기실 깨달음보다 이렇게라도 죽음에 의미를 부여해야 견딜 수 있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를 모티프로 한 연극 ‘내 아이에게’. 서울연극협회 제공
세월호 참사를 모티프로 한 연극 ‘내 아이에게’. 서울연극협회 제공

“허구나 상상은 없다”며 희생자 가족들의 증언을 인용해 참사 후 현재까지 이들의 삶을 정직하게 이어 붙인 연극에서 요즘식의 세련미를 기대하긴 어렵다. ‘개인의 아픔을 정직하게 비추는’ 무대 조명과 동선, 음악 역시 단조롭다.

‘모든 증언에는 또 다른 공백이 있다. 증인은 정의상 살아남은 자이며, 그래서 모두가 어느 정도는 특권을 누린 사람들임을 의미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작가 프리모 레비의 말처럼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은 그들이 끝내 말하지 못한 공백,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찾는 데 있지 않을까. 커튼콜 없는 조용한 배우 퇴장, 객석 불이 켜지며 “세월호 안에 아직 남아있는 9명을 기억합시다”라며 세월호 실종자 9명의 이름을 무대 자막으로 비추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제37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인 ‘내 아이에게’는 22~24일 서울 성북마을극장으로 바꿔 재공연한다. (02)6673-0100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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