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정찰총국 대좌 한국 망명
집권 후 4년간 140여명 처형
‘金과 공동운명체’ 균열 조짐
아직까지 장성급 탈북은 없어
북한 정찰총국의 대좌 출신 고위장교가 지난해 탈북해 한국으로 망명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김정은 체제’를 떠받쳐온 엘리트 집단이 추가로 이탈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의 엘리트는 최고 권력자와 운명공동체라는 공감대와 이권을 바탕으로 체제의 내구성을 뒷받침해왔다. 하지만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집권 이후 4년 여간 고위엘리트 140여명을 처형하며 ‘공포정치’를 확산시켰다. 2인자인 장성택과 리영길 총참모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공포정치로 엘리트집단의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했다. 처형된 인사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된 사람 또한 추가로 숙청될 우려가 커진 탓이다. 자연히 탈북과 망명을 통한 체제이탈 가능성이 높아져 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11일 “북한의 엘리트는 서로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여서 더 이상 운명공동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정부도 이 같은 북한의 공포정치가 엘리트의 체제이반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북한군 대좌(우리의 대령) 망명과 관련, “북한 권력층에 이상징후가 있다는 하나의 표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망명한 대좌는 대남ㆍ해외공작업무를 총괄하는 북한군의 핵심조직인 정찰총국 출신으로, 일선부대에 비해 영향력이 막강해 실제로는 중장(별 2개인 우리의 소장)급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북한군에서 이제껏 탈북한 인사 중에 가장 계급이 높다”며 큰 의미를 부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외에 지난해 5월 아프리카 주재 북한 외교관이 부인, 두 아들과 함께 국내에 입국했고, 2014년에는 동남아 주재 외교관도 탈북해 국내로 망명했다. 또한 지난해 동남아에서 근무하던 통일전선부 간부가 입국하는 등 북한 엘리트의 한국 행이 잇따르고 있다. 엘리트집단을 대상으로 한 북한 특유의 다중 감시체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의미다. 앞서 중국 저장성에 소재한 닝보의 류경식당에 근무하다 집단 귀순한 종업원 13명의 경우 중산층 이상 출신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간헐적인 망명이 북한 엘리트 전체의 동요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직 북한 엘리트의 집단탈북이나 연쇄탈북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부원장은 “앞으로도 한두 명씩 개별적 탈북은 계속되겠지만 황장엽 망명 때도 건재한 북한이 당장 흔들린다고 보기엔 무리”라고 말했다.
북한 군부에서 별을 단 장성의 숫자는 대략 1,200명선이다. 이중에 아직 탈북자가 없는 점도 체제의 공고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 직업군인은 정년이 없어 사망하지 않는 한 계급을 유지할 수 있다. 이번에 망명한 대좌와 같은 계급만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대좌가 국내로 망명했지만, 북한에서 그보다 상위계급인 장성 탈북자가 없다는 건 김정은 체제가 군부와 당 고위간부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체제불안 징조를 체제붕괴로 속단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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