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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를 택시처럼.. 나이롱 응급환자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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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를 택시처럼.. 나이롱 응급환자 어쩌나

입력
2016.04.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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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진료 가며 호출 “도와달라”

이송거부권, 민원 부담돼 못 써

제도 악용하는 잠재응급환자 급증

서울 관악소방서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관악소방서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기지역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구급대원 A(24)씨는 지난달 출동 장소에서 30㎞ 떨어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다녀오느라 3시간이나 관내를 비웠다.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사설구급차가 비싸서 그러니 한 번만 태워달라”는 50대 암환자 B씨의 요청 때문이었다. B씨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만성질환자라 이송을 거부해도 됐다. 하지만 ‘119 구급 의뢰를 거부당했다’는 민원 등 행여 뒤탈이 생길까 두려워 B씨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A씨는 11일 “외래진료를 보러 가는데도 막무가내로 구급차를 이용하겠다고 떼를 쓰는 민원인이 많다”며 “대부분 요청에 응하나 그 때마다 관내에 돌발 상황이 발생할까 맘을 졸여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생명이 위급하거나 즉시 치료를 요하는 응급환자를 위해 마련된 119 구급차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벼운 질환도 구급차에 의존하는 ‘무늬만 응급환자’ 때문에 일선 소방서가 구조ㆍ구급 작업에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응급의료법 상 구급차는 응급환자나 이에 준하는 증상을 보이는 준응급환자만 이용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응급실 진료가 필요할 때에도 잠재응급환자로 분류해 동승이 허용된다. B씨는 모든 조건에 미달한 비응급환자였지만 구급대원들은 어쩔 수 없이 구급일지에 잠재응급환자로 기재할 수밖에 없었다.

구급대원들에게도 이송을 거부할 권리는 있다. 2011년 119 구조ㆍ구급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치통ㆍ감기 환자나 취객, 검진ㆍ입원을 목적으로 하는 만성질환자는 구급차 이용이 금지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송 거부권이 행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울 한 소방서의 지휘팀장 C씨는 “119 구급차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시민의 발’이 돼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해 이송 거부권은 사실상 말뿐인 제도”라며 “환자를 옮겼다는 구실을 만들기 위해 비응급 민원인도 잠재응급환자로 둔갑시키고 있다”고 털어놨다.

실제 무늬만 응급환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119 구급활동으로 이송한 응급환자는 2013년 55만3,416건에서 2015년 53만6,554건으로 감소한 반면, 잠재응급환자 이송은 같은 기간 48만3,078건에서 62만6,272건으로 급증했다. 한 일선 소방서 관계자는 “잠재응급환자 중 편의에 의해 구급차를 이용한 단순 민원인도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한정된 구급 자원이 오ㆍ남용 되다 보니 돌발 사건이 터졌을 때 정작 구급차가 없어 시간을 지체하는 어이없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구급대원 D씨는 지난해 8월 술을 먹고 싸우다 다친 취객들을 밤새 병원으로 옮기느라 비슷한 시간 관내에서 발생한 자해 사건에 제대로 출동하지 못했다. D씨는 “다행히 인근 지역 소방서에서 구급차를 지원해 자해 당사자를 무사히 이송했지만 엉뚱한 취객 뒤치다꺼리로 밤을 새우는 날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구급 인력과 장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119 구급차가 효율적인 응급수단으로 자리잡으려면 시민의식 개선은 물론 구급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김엽래 경민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시민들부터 ‘119는 공짜’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면서도 “심야시간대 원거리 응급 이송이 빈번한 점을 감안할 때 지방자치단체들도 원활한 공조 체계를 만들어 구급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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