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의무자의 아동살해는 일반 살인죄보다 형량 높아야”
13세 미만에 국선변호사 선임 등 아동학대처벌법 개정 시안 제시
살해하려는 고의가 없고 따로 흉기를 준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폭행이 지나쳐 사망에 이르렀다. 이런 경우 법적으로 살인죄를 적용해 처벌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피해자가 상습적으로 집안에서 학대를 당하는 아동이라면 어떨까? 한국여성변호사회가 부모 등이 아이를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아동학대살해죄를 신설해 일반 살인죄보다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변호사회는 11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개최한 ‘아동학대의 현주소, 예방과 근절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내용의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시안을 내놨다.
아동학대 피해자가 죽음에 이르러도 살인죄가 인정되는 것은 흔치 않다. 2013년 울산 아동 학대 사망사건의 경우 검찰이 학대 가해자인 계모를 살인죄로 기소했지만, 1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가 판단을 달리해 “(흉기를 따로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신체가 온전히 발달하지 못한 아동에게 성인의 주먹과 발은 흉기나 다름 없다”며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 징역 18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계모의 폭행으로 의붓딸이 사망한 칠곡 사건, 소금중독을 유발해 죽음에 이르게 한 소금밥 학대 사건 등 대부분 아동학대가 장기간 학대를 반복한 끝에 피해 아동의 목숨을 앗아간 경우지만 살인죄 적용이 어렵다. 대신 적용이 가능한 학대치사죄로 처벌할 경우 대법원 양형위원회 기준은 징역 6~9년형이다.
아동학대살해죄 도입 논의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심포지엄에서 신수경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상근 변호사는 “아동에게 계속 폭력을 가한 경우 숨질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고 봐야 한다. 성인의 주먹과 발은 흉기나 마찬가지라서 살인의 고의를 적극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정시안은 아동학대살해죄에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제안했다.
반론도 없지 않다. 한진희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일반 살인죄로 사형 또는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어 현행 법체계상 엄정한 처벌이 곤란한 상황은 아니다”며 법률 개정이 아닌 양형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아동학대치사와 중상해죄에 대한 형량을 높이자는 주장도 나왔다. 학대 범죄유형은 다양한데 형량 기준은 아동학대치사와 아동학대중상해에 대한 것이 전부다. 최근 7세 손자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조모에게 아동학대치사죄로 징역 6년이 선고되고, 5세 친딸을 담뱃불 등으로 수 차례 학대한 친모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 역시 형을 더하거나 줄이는 요건만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신 변호사는 아동학대 치사ㆍ중상해죄에 대한 형량을 높이고 다른 아동학대 범죄에 대해서도 아동의 연령, 불법의 정도에 따라 구체화할 수 있는 실효적인 권고안을 마련해달라고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촉구했다.
개정시안에는 13세 미만 아동에 대해서는 국선변호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해주는 규정도 포함됐다. 토론자로 참석한 권양희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는 “국선변호사 선임을 의무화하기 앞서 업무 편차를 줄이기 위해 피해아동 국선변호사들을 위한 업무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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