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스페인, 독일은 세계적인 자국 축구 리그를 운영하는 축구 강국들이다. 이들 나라 국민들의 축구 열기는 광적이다. 축구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축구 경기를 보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그런데 최근 이들 나라의 프리미어리그, 프리메가리가, 분데스리가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스타들이 하나 둘씩 축구 변방이라 할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고 있다. 돈 때문이다. 세계 경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선수들 몸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니 구단 운영이 힘들어졌다. 이런 유럽 축구 구단들에게 돈 나올 구석은 중국밖에 없다. 실제로 중국 광저우의 에버그란데는 스페인리그 명문 클럽 아틀레티코의 마르티네스 선수 영입을 위해 4,200만 유로(약 557억원)을 지급했다. 중국의 ‘축구굴기’가 극에 달한 것이다. 세계 축구계에서는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시진핑 주석이 집권하는 동안 중국 구단의 유럽 선수 싹쓸이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고급인력의 대표격인 의사들이 하나 둘씩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국내 한 대형 의료컨설팅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남에서 “중국으로 나가는 우리나라 의사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상하이, 베이징 등 대도시에서나 간간히 한국 의사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요즘은 항저우 등 중소 도시에서도 쉽게 한국 의사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국내 의사들의 중국 진출이 많은 진료과는 성형외과와 피부과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 달 발표한 ‘2015년 의료기관 해외진출 현황분석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기관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나라는 중국으로 전체 141건 중 52건을 차지했다. 중국 정부가 의료특구 조성, 해외투자 장려정책 등 시장 개방 정책을 펼치고 있어 국내 의료기관의 중국 진출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의료계는 전망한다. 한류 영향으로 중국 현지에서 미용?성형 수요가 지속되고 있는 것도 국내 의사들의 잇딴 중국행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중국 현지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한 원장은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라면서 “수도권은 고사하고 지역 대학병원도 갈 수 없고, 경제가 어려워 개원도 하지 못하는 젊은 의사들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일하면 한국보다 급여가 2~5배 높고, 환자가 많으면 인센티브도 챙길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 진출 3년 차인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처음 중국행을 결정했을 때는 ‘의대를 나와 중국까지 가야 하나’ 라는 회의감이 들었지만 실제 일하고 보니 수입도 안정적이고 한국과 거리도 멀지 않아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문의는 “지금은 성형외과, 피부과, 치과 전문의들이 진출하고 있지만 국내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다른 진료과 전문의들도 중국행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의료굴기’를 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한국을 떠나 중국에서 의료행위를 할 국내 전문의가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다.
의사들의 중국행이 가시화 되자 의료계 일각에서는 “젊고 우수한 의료 인력들이 대거 중국 의료시장으로 진출하면 머지않아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암 수술 등 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료서비스와 의료진의 시술 수준에서 자천타천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 인력이 줄줄 새고 있다. 지금 화타는 웃고, 허준은 땅을 치고 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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