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부품 납품 협력업체 사장들을 불러 각 노조를 와해하기 위한 전략을 공모한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달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인 한모씨의 자살을 계기로 결성된 유성기업범시민대책위원회는 11일 서울 정동길 민주노총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대차의 노조 파괴 공작이 유성기업뿐 아니라 다른 부품사들에 대해서도 이뤄졌을 공산이 크다”며 지난 2월 대전지검에 현대차 등을 부당노동행위 등 혐의로 고소하면서 제출한 증거 자료들을 공개했다.
이날 대책위는 ‘자동차 산업의 노사관계 현황과 전망’이란 제목의 3쪽 분량 대회사(大會辭) 문건을 공개했다. 2011년 12월 12일 유성기업 최모 전무가 현대차 권모 대리에게 이메일로 전달한 것으로, 당시 유성기업과 계약을 맺고 직장폐쇄와 노조 파괴를 주도했던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이모 노무사가 작성한 문건이라고 원고 측 소송 대리인인 김상은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주장했다.
문건을 보면 현대차 관계자로 추정되는 모임 주최자가 먼저 “지난 3년 간은 1987년 이래 가장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해왔다”며 “발레오전장, 대림자동차, 상신브레이크의 노사관계 안정화가 협력사 전체의 노사관계 안정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러나 내년에는 지난 3년과 같은 노사관계 안정 기조가 유지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며 그 배경 중 하나로 협력업체 노조 지회의 강경파 집행부(만도기계 김창한, 보쉬전장 정근원) 당선을 꼽았다. 대회사는 “오늘 이 자리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고 지혜를 모으고 뜻을 합친다면 노사관계 안정화를 지속시키는 묘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2011년 말 현대차와 부품업체 경영자 간 회동 이후 실제 만도와 보쉬전장에선 노조 파괴가 실행됐다는 게 대책위 주장이다. 김 변호사는 “보쉬전장의 경우 2012년 2월 성과급 관련 노사갈등 국면에서 어용 노조를 설립하고 지회장을 해고했다. 만도도 같은 해 7월 여름휴가를 틈타 직장을 폐쇄한 뒤 조합원 선별 복귀를 통해 어용 노조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협력업체들의 노사관계에 광범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밑받침하는 증거가 공개된 건 처음이다. 앞서 금속노조와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 1월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2년 진행된 유성기업 노조 파괴 과정에 현대차가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유성기업 부당노동행위를 수사한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측은 “협력업체들과 업계 현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할 수는 있지만 금속노조가 의혹을 제기한 2011년에는 협력사들 대상 회의를 개최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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