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골프 시즌 첫 메이저대회 마스터스를 앞두고 대니 윌렛(29ㆍ잉글랜드)은 출전을 망설였다. 아내 니콜이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산 예정일은 공교롭게도 우승자가 가려지는 대회 마지막 날이었다. 윌렛은 골프 다이제스트 등 현지 언론에서 올해 마스터스 우승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힐 만큼 최근 절정의 샷 감각을 보였다.
하지만 윌렛은 마스터스 출전보다는 가족을 택했다. 윌렛은 “골프 대회가 내 첫째 아이의 출산보다 중요하다고 하는 일부 ‘생각 없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내 아내의 출산시기와 마스터스가 겹친다면 아내 곁을 지킬 것”이라며 가족이 우선이라는 뜻을 언론에 수 차례 밝혔다.
그는 지난해 처음 마스터스에 출전해 공동 38위의 성적을 냈고 메이저 대회 개인 최고 성적은 브리티시오픈 공동 6위(2015년)였다. 아직 20대 젊은 나이라 앞으로 출전할 메이저 대회가 많이 남아있다고 위안을 삼을 수는 있겠지만 메이저 대회 출전 기회가 자주 오는 것이 아닌 만큼 윌렛에게도 올해 마스터스는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일 터였다.
이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 듯 그의 아들은 대회 시작 일주일 전인 1일 예정일 보다 열흘이나 빨리 세상에 나왔다. 윌렛은 부랴부랴 마지막(89번)으로 출전 선수 등록을 했다. 아버지가 된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거스타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윌렛은 11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GC(파72)에서 열린 마스터스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5개를 잡아내는 깔끔한 플레이로 5언더파 67타를 쳤다. 1~4라운드합계 5언더파 283타를 친 윌렛은 생애 처음으로 마스터스 우승을 차지했다. 잉글랜드 선수가 마스터스 정상을 밟은 것은 1996년 닉 팔도(1989년ㆍ1990년ㆍ1996년 우승) 이후 20년만이다. 이로써 윌렛은 잉글랜드 출신으로 그린 재킷을 입은 두 번째 선수가 됐다. 대회 출전을 포기하려고 했던 윌렛이 마스터스 우승컵까지 차지했으니 예정일보다 일찍 세상에 나온 아들은 그야말로 복덩이다.
윌렛은 유럽프로골프 투어에서 주로 활약하는 선수라 국내 팬들에게는 비교적 낯선 이름이지만 유럽투어에서 통산 4승을 거둔 ‘강자’다. 지난해 7월 오메가 유러피언 마스터스와 올해 2월 오메가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유럽 투어를 제패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세계 랭킹 역시 12위로 ‘톱 랭커’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순위에 올라 있는 선수다.
윌렛은 두 형의 손에 이끌려 골프에 입문했다. 그는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두 형을 꺾을 수 있는 스포츠 종목을 찾아야 했다”며 “골프는 내가 형들에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종목이었고 나는 골프에 반해 몇 시간 동안이나 혼자 연습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인 2007년 잉글랜드 아마추어 선수권대회를 제패했고 2008년에는 아마추어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던 실력파다.
윌렛은 올해 유럽투어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 289.1야드로 111위에 올라 있어 장타자로 분류하기는 어려운 선수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그린 적중 시 평균 퍼트 수 1.58개로 안정적인 퍼트 감각을 보였고 한 홀에서 3퍼트를 한 것은 2라운드 한 번밖에 없었을 만큼 그린 위에서 강점을 발휘했다
윌렛은 마스터스 제패 후 “아내와 운명에 대해 얘기했다. 오늘 일을 포함해 최근에 벌어진 모든 것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며 “정말 미친 한 주였다. 현재로서는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우승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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