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락부락한 눈에 입을 비집고 나온 커다란 송곳니.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속 종족 오크 대신 컴퓨터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속 캐릭터를 떠올린 사람들이라면 초여름을 고대할 만하다. 가장 성공한 게임 중 하나로 꼽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밑그림 삼은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워크래프트)이 6월 9일 개봉하기 때문이다.
‘워크래프트’뿐만 아니다. 모바일 게임으로 한때 세계인의 스마트폰을 점령했던 ‘앵그리버드’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내달 19일 극장가를 찾는다. 인기 콘솔게임 ‘어쌔신 크리드’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올 연말 개봉 예정이다. ‘툼레이더’도 다시 영화로 만들어져 내년 선보인다. 할리우드가 앞다퉈 게임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2000년대 초반 제작 경향이 올해 재현되는 분위기다.
2000년대 초반은 게임 원작이 우대받던 시절이었다. ‘툼레이더’(2001)와 ‘파이널 판타지’(2001), ‘레지던트 이블’(2002), ‘사일런트 힐’(2006) 등이 모니터에서 스크린으로 옮겨가며 열성 게임 팬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개인용 컴퓨터의 확산과 인터넷의 도입에 따라 특정 게임에 대한 팬덤이 형성되면서 할리우드에 게임 원작 영화 전성기가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5편과 3편까지 각각 만들어진 ‘레지던트 이블’과 ‘사일런트 힐’을 제외하면 희망보다 절망을 안겨줬다. 흥행은 신통치 않았고, 평단으로부터 악평을 받았다.
할리우드가 게임 원작에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이유는 10여 년 전과 비슷하다. 게임에 열광하는 대중이 많은 점을 일단 높이 사고 있다. 인지도가 높아 영화를 알리기에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소재 고갈이란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옛 영화들을 다시 불러내어 새롭게 만들고 있는 요즘 이야기 줄기를 지닌 게임은 매력적이다.
진용도 화려하다. ‘워크래프트’는 공상과학영화 ‘더 문’(2009)과 ‘소스코드’(2011)로 호평 받은 던컨 존스가 메가폰을 잡았다. 적대적 관계인 인간과 오크의 전쟁과 평화를 담게 된다. 게임처럼 돼지와 새들의 다툼을 그릴 ‘앵그리버드 더 무비’는 목소리 연기자로 숀 펜이 가세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액션영화가 될 ‘어쌔신 크리드’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한 명인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한다. 새로운 ‘툼 레이더’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로 깜짝 스타가 된 데이지 리들리가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를 연기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빈약함이란 고민은 여전하다. 게임은 이야기 얼개를 제공하고 게이머가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가도록 하는 반면 영화는 좀 더 촘촘한 이야기 전개를 관객에게 선보여야 한다. 각색 과정을 통해 게임 이상의 재미를 던져줘야 하는 게 영화사들의 숙제다. ‘워크래프트’ 출연배우이자 게임광인 로버트 카진스키는 “게임은 수백 시간 동안 즐기며 인물들에게 동감하고 이야기 전체를 파악하게 된다”며 “하지만 영화가 (2시간 남짓한)짧은 시간 안에 이를 다룬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미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국내 영화계 관계자는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익숙한 소재를 다루기는 하지만 게임의 이야기 구조가 선명하지 않아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잠재적 관객들에게 알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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