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선 현대비엔지스틸 사장이 운전기사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 온 사실이 드러났다. 안 그래도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 정우현 MPK그룹 회장의 폭행 사건으로 시끄러운 마당에 정 사장의 폭언ㆍ폭행까지 겹쳤으니, 재벌의 갑질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대가 3세인 정일선 사장의 운전기사들은 회사가 만든 A4 용지 100여장 분량의 황당 매뉴얼을 지켜야 했다. “모닝 콜 후 ‘가자’라는 문자가 오면 번개같이 뛰어 올라가야”, “출발 30분 전부터 빌라 내 현관 옆 기둥 뒤에서 대기할 것” 등 그 내용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운전기사들은 매뉴얼대로 하지 못할 경우 경위서를 쓰고 벌점과 감봉 조치까지 받아야 했다. 운전기사들은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달리라는 정 사장의 주문에 불법 유턴을 일삼았고, 그 때문에 월 500만~600만원의 과태료가 나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역시 재벌 3세인 이해욱 부회장도 운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사의 뒤통수를 때리고 욕설을 했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차량 룸 미러를 돌리고 사이드 미러도 접고 운전하게 하는 등 안전 운전까지 방해했다.
‘미스터피자’로 유명한 MPK그룹 정우현 회장은 건물 안에서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문이 잠겨있자 건물 경비원의 목과 턱 사이를 두 차례 때렸다. 경비원은 관리 매뉴얼에 따라 밤 10시에 건물 문을 잠갔으니 아무 잘못 없이 폭행을 당한 셈이다.
오너들이 운전기사와 경비원에게 폭행과 폭언을 한 것은 이처럼 그저 마음에 들지 않고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에서다. 피해자들이 참다 못해 폭행 당한 사실을 공개하자 이들은 뒤늦게 사과문을 내놓았지만 그것을 진심 어린 반성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도리어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마지못해 한 사과로 보는 여론이 무성하다.
재작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계기로 재벌의 갑질을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들끓었다. 그런데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내가 오너다,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그릇된 특권문화가 재벌가에 만연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재벌들은 지금도 입만 열면 반기업 정서 때문에 사업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데 재벌가 오너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크게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한국식 천민자본주의야말로 반기업 문화의 일등공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벌 오너들은 사회분위기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도덕률과 품위를 갖추려고 노력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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