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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고베야마구치파의 등장에 판도 바뀌는 日야쿠자 세상

입력
2016.04.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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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구미 역대 두목 (한국일보 그래픽)
야마구치구미 역대 두목 (한국일보 그래픽)

일본 사회를 긴장하게 만든 최대 폭력조직 ‘야마구치파(山口組)’의 내분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세력이 가장 큰 야쿠자 조직이 지난해 내분사태로 둘로 나눠진 뒤 올 초부터 본격적인 충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래 도쿄 중심가는 야마구치파의 최대 활동거점이 아니지만 지금은 롯폰기 같은 유흥가를 중심으로 기존세력과 신흥 ‘고베야마구치파(神戶山口組)’가 ‘배신자 응징’을 놓고 충돌이 본격화되는 국면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 경찰청은 7일 고베야마구치파를 폭력단대책법에 따라 ‘지정폭력단’으로 선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초 6월까지 지정할 예정이었지만 지난달 쌍방 조직을 대립상태로 인정한 뒤 12개 도도부현(都道府?ㆍ광역자치단체)에서 21건의 발포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지정을 앞당겼습니다.

뭐든지 절차를 중시하는 일본에서 이번 조치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됐습니다. 보통 변호사와 법학자 등 심사단을 구성해 1년반이 넘도록 검토하며 지정되던 게 불과 8개월만에 초스피드로 이뤄졌습니다. 이로써 일본에서 국가가 관리하는 폭력조직은 22개가 됐습니다. 핵심조직원 수는 3월1일기준 고베야마구치가 2,700명, 야마구치가 5,700명. 고베측은 36개 도도부현, 야마구치파는 44개 도도부현에 지방조직이 있습니다.

그럼 지정폭력단이 되는 기준은 뭘까요. 폭력단의 위력을 사용한 자금획득 활동이 확인돼야 합니다. 또 범죄이력이 있는 구성원의 비율이나 계층형 또는 피라미드형 조직체계의 특징이 입증돼야 합니다. 일본 경찰의 조치는 앞으로가 더 관건입니다. 일본에선 야쿠자간 ‘전쟁’을 ‘항쟁(抗爭)’이라 부릅니다. 경찰당국은 야마구치파와 고베파 양쪽에 대해 ‘특정항쟁지정폭력단’지정을 검토중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와바리’(세력범위)를 중심으로 설정된 경계구역에서 상대조직 사무실을 서성거릴 수 없으며 5명 이상 한 곳에 모여있기만 해도 경찰 판단에 따라 즉시 체포됩니다.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과거 한국인의 학창시절엔 껄렁껄렁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너희 모여있지 마라~”고 위협한다거나, 1980년대 후반까지만해도 대학생 3명만 모여도 경찰이 소지품 검사(불온서적 적발 등)를 하던 풍경이 흔했습니다.

지금 야마구치파와 고베측은 변호사를 동원한 내부 법률대응회의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법망을 피하기 위해 ‘스터디그룹’을 한다니 공권력에 쫓기는 쪽도 적응이 빨리지기 마련이지요. 고베야마구치파의 한 사무실에서는 “5인조로 주변을 순찰하고 있는데 적용법망이 강해지면 도대체 어떻게 상대를 방어하고 일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조직수뇌부에 빗발치고 있답니다.

이들의 항쟁에 동원되는 무기들은 권총에서부터 화염병까지 다양합니다. 실제 권총 밀매가격이 요즘 부쩍 비싸졌다고 합니다. 작년 여름 20만~30만엔(200만~300만원) 수준이던게 야마구치파 분열 이후 70만~80만(700만~800만원)으로 급등했다고 합니다. 실탄은 1발에 1만엔(10만원)이라고 하니 조직의 예산(?)이 많지 않다면 아껴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야마구치파 측에선 일본에서 열리는 5월 이세시마(伊勢志摩) 주요7개국 정상회의가 끝날 때까지는 고베측 보복작전에 나서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갔다고 합니다.

일본 최대 폭력조직 야마구치구미와 세번째로 큰 조직이 된 고베야마구치구미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급기야 경찰이 두 조직의 갈등을 항쟁으로 규정했다. 2001년 일본 오사카부 경찰본부 수사원들이 고베 소재 야마구치구미 총본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빚어진 모습. 도쿄=교도 연합뉴스
일본 최대 폭력조직 야마구치구미와 세번째로 큰 조직이 된 고베야마구치구미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급기야 경찰이 두 조직의 갈등을 항쟁으로 규정했다. 2001년 일본 오사카부 경찰본부 수사원들이 고베 소재 야마구치구미 총본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빚어진 모습. 도쿄=교도 연합뉴스

사족이지만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 경찰은 두 조직의 싸움보다 민간인 피해를 막는데 공권력 행사의 무게를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 천하의 야쿠자지만 단순한 ‘남자 중의 남자들’이라 그런지 어린 아이 같은 면들도 보입니다. 권총이나 일본도(日本刀)까지 동원되는 무시무시한 항쟁이긴 하지만 처음 야마구치 항쟁사태가 세상에 드러난 장면은 조직원 대 여섯 명이 상대 조직원 한 명을 발로 밟고 얼굴을 걷어차고 하는 동네 청소년들 싸움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신주쿠 가부키쵸(歌舞伎町) 길거리에서였습니다.

또 수시로 방송뉴스에 나오는 게 파손된 건물벽을 확대 촬영한 장면입니다. 정체모를 트럭이 상대조직 사무실 벽을 들이받는 미제의 교통사고들입니다. 이를 두고 “야쿠자들 하는 짓이 귀엽다”는 반응까지 있는걸 보면 의외이지요.

마지막 사족으로 야쿠자 사회에서 재일교포들의 활약상이 대단합니다. 과거부터 일본사회 내 소외된 계층이란 점에서 ‘어둠의 세계’로 진출할 유혹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반도출신들이 워낙 담력과 배포가 좋아 조직의 수뇌부로 진출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 체포된 한 조직의 ‘넘버2’ 거물인사도 떡 벌어진 어깨에 한국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의 야마구치파 6대 두목인 시노다 겐이치(篠田建市)는 재일교포 출신들의 역할과 공을 인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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