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3일 꼴찌. 잔류권과 7점 차.
2016년 4월 3일 선두. 2위와 7점 차.
지난 3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레스터시티 구단의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작년 이맘 때 강등 당할까 가슴 졸이던 구단이 올 시즌 우승을 눈앞에 뒀다. ‘여우 군단(레스터시티의 애칭)’의 도전이 종착점을 향해가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선두 레스터시티는 10일 오후 9시30분(한국시간) 선덜랜드와 33라운드 원정 경기를 치른다. 2위 토트넘과 승점 차는 7. 레스터시티가 남은 6경기에서 4승만 올리면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한다.
라니에리 리더십
레스터시티는 1884년 창단해 꽤 오랜 전통을 자랑하지만 성적은 보잘것없었다. 2부와 1부 사이에서 승격과 강등을 반복했다. 역대 최고 성적은 1928~29시즌 정규리그 준우승이다. 레스터시티는 작년 시즌 32라운드를 마친 시점에서 꼴찌였다. 프리미어리그는 20팀 중 하위 3팀이 강등된다. 하지만 막판 6경기에서 4승1무1패를 기록하며 14위로 겨우 잔류에 성공했다. 올 시즌도 전문가들은 레스터시티를 강등권으로 평가했다. 시즌 전 BBC는 레스터시티 순위를 19위, 스카이스포츠는 14위로 예상했다.
이런 예상을 뒤집은 수직 상승의 주역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5·이탈리아) 감독이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첼시(잉글랜드)와 유벤투스(이탈리아), 발렌시아(스페인) 등 유럽 4개국 14개 클럽 지휘봉을 잡아 풍부한 경험을 자랑한다. 눈높이를 선수에 맞추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한 강점을 살려 선수의 모국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덴마크의 전설적인 골키퍼 피터 슈마이켈(53)의 아들인 레스터시티 골키퍼 캐스퍼 슈마이켈(30·덴마크)은 BBC와 인터뷰에서 "라니에리 감독과 함께라면 영어를 못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소박한 ‘피자 파티’와 ‘록 음악’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팀이 무실점으로 승리하면 선수들에게 단체로 피자를 ‘쏜다’. 경기 전에는 레스터 출신 록 밴드 ‘카사비안’의 ‘파이어(Fire)’로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운다. 그는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늘 강등권에 머물며 패배 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을 일으켜 세웠다.
제이미 바디의 인생역전 스토리
레스터시티 공격수 제이미 바디(29)의 스토리는 한 편의 만화를 보는 듯하다.
과거 치료용 목재 공장에서 일하며 아마추어 8부 리그 선수로 살던 그의 주급은 30만 파운드(4만8,000원)였다. 축구 선수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독하게 일과 축구를 병행해 7부와 6부, 5부 선수로 점차 발전하다가 2012년 당시 2부 리그였던 레스터시티로 이적해 인생역전 스토리를 썼다. 2013~14시즌 16골을 터뜨리며 팀을 승격시켰고 올 시즌 현재 19골로 해리 케인(23ㆍ토트넘ㆍ22골)에 이어 득점 2위다. 삼사자 군단(잉글랜드 대표팀)의 일원으로 최근 독일, 네덜란드와 평가전에서 연속 골을 터뜨리며 주가를 높였다. 바디는 빅클럽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올해 초 레스터시티와 2019년까지 재계약했다.
한 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그의 주급은 8만5,000파운드(1억3,700만원)에 달한다.
1% 미만 확률이 현실로
시즌 전 영국 도박업체들이 전망한 레스터시티의 우승 확률은 5,000분의 1이었다. 하지만 1년 만에 180도 뒤집어졌다. 텔레그라프는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23시즌 동안 6경기를 남겨 놓은 시점에서 1위였던 팀이 최종 우승을 차지한 건 16번이나 된다고 전했다. 확률로 따지면 70% 가까이 된다. ESPN은 얼마 전 프리미어리그의 우승 팀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권(4위 이내) 확률을 매겼다. 레스터의 우승 확률은 88%, 4위 이내 진입 확률은 100%였다. 레스터시티는 선덜랜드에 이어 웨스트햄(홈)-스완지시티(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원정)-에버턴(홈)-첼시(원정)를 상대한다. 이 중 선덜랜드는 18위, 스완지시티는 15위다. 1%도 안 되던 레스터시티의 우승 가능성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