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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미디어, 소문의 생명력이 여전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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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미디어, 소문의 생명력이 여전한 이유

입력
2016.04.0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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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시대

마쓰다 미사 지음ㆍ이수형 옮김

추수밭 발행ㆍ260쪽ㆍ1만4,000원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 비행기에서 휴대폰을 켜면 추락한다.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 다들 한번쯤은 들어봤을 소문이다. 도시전설, 가십, 찌라시, 미신, 흑색전선.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명하지 않은데도 사람들 사이에 혼란을 일으키고 때로는 실제적인 결단과 행동까지 불러일으키는, 소문은 강력한 정보다.

소문은 왜 발생하고 소문은 어떻게 퍼질까? 미디어와 루머를 연구해온 사회심리학자 마쓰다 미사는 “소문이란 우리 일상에 밀착해 있는 소통 수단이자 가장 오래된 미디어”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 유구함과 영향력에 비해 소문은 여전히 그 실체가 불명확하다. ‘밑도 끝도 없다’거나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랴’는 모순된 특성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 소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본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소문들을 총망라하고, 사회학과 심리학 민속학을 넘나들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소문의 실체를 파헤친다. 저자에 따르면 소문이란 “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정보가 아닌 ‘이야기’로 소비되고, 정보의 권위보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이와의 관계가 핵심”이다. 따라서 소문의 생명력이란 진실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그럴 듯한 서사와 내적 논리를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소문의 시대’가 소문에 관한 이전의 고전들과 가장 구별되는 지점은 인터넷과 SNS의 등장 이후 소문의 양상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을 그 특징으로 했던 이전 소문들과 달리, 오늘날의 소문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이메일과 블로그 등을 통해 국경의 한계도 시간의 한계도 없이 무한하게 퍼져나간다. 특히 비슷한 사람들끼리 보고 싶은 정보만 공유하는 인터넷의 특성상, 그 과정에서 과장과 왜곡의 무한한 반복을 통해 소문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향하게 될 수밖에 없다.

방대한 예시가 실려있지만 일본에서 유행한 소문들이 대부분인 만큼 한국인 독자가 그 생생함을 완벽하게 전달받기는 어렵다. 다만 저자가 소문의 심각성에 대해 언급하며 들고 있는 사례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폭동설이라는 것은 상기할 만하다. 1923년 9월 1일 ‘조선인들이 방화를 일삼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 ‘조선인 폭동설’은 순식간에 전국인 학살로 이어져 수천여 명의 조선인 희생자를 낳았다. ‘악의’에서 탄생하지 않았을지라도, 실제적으로 소문이 낳는 결과는 최초 발화자조차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것이다.

소문은 위험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때로 소문을 통해서 ‘보고 싶은 것’을 본다. 2011년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쓰나미로 사라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봤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유령이라도 좋으니 꼭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절절한 기대에서 나온 일종의 희망 목격담인 셈이다. 기실, 믿어도 좋은 진실만 남아있다면 소문은 횡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로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믿을만한 이야기들만 전달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불행히도 세상은 그렇지 않아서, 우리는 한편으로 소문을 통해 기대하고 꿈꾸기도 하는 것이다.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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