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로 심란해하지 말고 우리는 실력으로 승부하면 됩니다.”
7일 오후 서울 노량진동에 위치한 한 공무원 준비학원. 수업 시작 전 분위기를 다독이려는 강사의 위로에도 수강생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아 보였다. 정부서울청사에 몰래 들어가 시험지를 훔치고 성적을 조작하려다 구속된 공무원 시험 응시생 송모(26)씨 사건 때문이었다. 공무원 준비생 김모(29)씨는 “정부 건물이 이렇게 쉽게 뚫렸는데 처음 일어난 사건이라고 어떻게 장담하겠느냐”며 “의욕이 떨어져 좀처럼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 공무원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가운데 터진 송씨 사건으로 공무원시험 준비생(공시생)들이 술렁이고 있다. ‘치가 떨린다’는 분노가 대부분이었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며 공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이날 공시생들이 많이 몰리는 노량진 학원가는 종일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3년 동안 7급 공무원을 준비하다 올해부터 9급으로 눈높이를 낮췄다는 우모(31)씨는 “불합격이 반복되다 보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 때가 많다”며 “송씨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범죄에 빠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부에만 매달리다 보면 인간관계가 허물어지고 가족에게도 미안한 마음에 이성적 판단이 쉽지 않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실제 공무원은 공채 경쟁률이 수백대 1까지 치솟을 만큼 선망의 직업이다. 올해 서울시 7급 공무원 일반행정 직군은 41명 모집에 1만1,819명이 지원해 무려 28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송씨가 응시했던 지역인재 7급은 대학별 추천을 받아 경쟁률은 비교적 낮다. 하지만 학과성적 상위 10% 이내ㆍ토익 점수 700점 이상 학생만 추천 대상이 되고 학교별 추천 인원도 한자릿수여서 체감 경쟁률은 더 치열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공시생들은 여론의 시선이 따가워질까 염려하면서도 공무원에 도전할 수밖에 없는 취업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4년차 7급 공무원 준비생 이모(29ㆍ여)씨는 “대기업 직장 새내기도 파리 목숨인 상황에서 직업 안정성과 노후가 보장된 공무원을 선호하는 구직자들을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모(27ㆍ여)씨도 “비뚤어진 욕망으로 범죄에 손을 댄 송씨의 행동은 공시생 전부를 비도덕적 부류로 매도한 것”이라면서도 “정부와 사회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왜 공무원에 목을 매는지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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