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을 이끌고 첫 우승 감격을 맛본 추일승(53) 감독은 ‘비주류’라는 표현이 무척 익숙하다. 감독 생활 13년 동안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가벼운 농담을 던진다. “비주류요? 사실 제가 술을 잘 못 마십니다.”
추 감독의 농구 인생은 굴곡이 많았다. 지금은 해체된 ‘농구 변방’ 홍익대를 나왔고, 1985년 실업 기아자동차에 입단했다. 그러나 한기범, 김유택에게 밀려 벤치만 지키다가 87년 은퇴해 구단 주무(매니저)로 변신했다. 이후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그는 97년 상무 코치를 제의 받고 지도자로 변신했다.
99년 상무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는 팀을 잘 꾸리고도 정상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농구계에서는 ‘비주류인 추 감독이 어딘지 모르게 손해 보는 것 같다’는 말들이 나왔다. 그래도 추 감독은 자신의 별명 ‘소’처럼 묵묵히 갈 길을 갔고, 올해 마침내 정상에 섰다.
그는 7일 본보와 통화에서 “우리 사회는 꼭 좋은 학교를 나와야 실력도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다”며 “그렇지 못하더라도 실력을 키우면 기회는 온다. 남에게 의지 하지 말고 실력부터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연줄에 연연하면 안 돼
추 감독은 가끔 후배들에게 ‘자리 좀 알아봐 달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면 단호하게 말한다. “줄 서려고 하지 말아라. 네 이름을 들으면 무엇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면 먼저 너를 찾는다.”
추 감독은 명문대를 나온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는 생각으로 떳떳하게 농구판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나는 비주류가 아니다. 주류다”라고 말한다. 이런 추 감독을 보는 동갑내기 친구이자 기아자동차 입단 동기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은 그를 ‘소’라고 불렀다. 추 감독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사람이 변하기보다 끈기 있게 하나의 길로 꾸준히 가면 뭔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개인적인 신념이 있다”며 “한 번 밀고 나가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고 밝혔다.
그 동안 ‘포워드 농구’로 우승이라는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꿋꿋이 자신만의 농구를 추구한 결과 감독 계약 마지막 해 일을 냈다. 그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마이 웨이(My Way)’ 가사처럼 조금 흔들림은 있었지만 내 갈 길을 그대로 간다는 내용이 크게 와 닿았다”며 “계약 마지막 해라 부담도 있었지만 원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농구를 해보자는 마음이 더 강했다”고 돌이켜봤다.
남은 ‘버킷 리스트’는 조림 사업
추 감독은 2009년 부산 KTF 지휘봉을 놓고 야인 생활을 했다. 이후 학자처럼 선진 농구의 전술 책을 보고 방송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한편으로는 ‘프로에서 다시 나를 불러줄까’라는 불안감도 있었다. 현장과 멀어졌던 그가 다시 돌아오고 싶었던 계기는 2010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미 대학농구 ‘파이널포’를 현장에서 직접 관람한 것이었다.
추 감독은 “경기장에 가득 찬 8만5,000명의 관중을 보며 ‘내가 농구를 안 했다면 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농구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꼭 다시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듬해 오리온이 추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장으로 돌아온 뒤 그의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에는 우승이 있었는데 긴 시간 끝에 달성했다. 이번 우승으로 오리온과 재계약은 기정사실이 됐다. 관건은 계약 기간이다. 추 감독은 “감독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승부의 긴장감을 회피하고 싶다면 과감히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감독을 그만두면 그는 남은 버킷 리스트를 위해 귀농 할 생각이다. 추 감독은 “나무를 가꾸고 싶다”며 “지금 경매에 나오는 임야를 많이 보고 있다”고 웃었다. 또 “정말 심심하면 시골에서 농구 책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농구 관련 일은 되도록 자제할 생각이다. 그는 “농구를 정말 보고 싶다면 돈 내고 보러 오겠다”며 “농구 원로라고 해서 VIP석에 자리 잡고 그러면 후배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된다. 아이들이 즐기면서 농구를 배우는 농구 교실도 운영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이것도 후배들의 자리를 뺏는 것 같아 못하겠다. 그냥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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