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내리면 7초 뒤 경찰 연결
오작동 잦고 은밀한 조작 어려워
편의점들 대부분 손실보험 가입
보험도 없는 알바생만 위험 노출
“이번에도 헛걸음이야?”
5일 저녁 서울 A경찰서 이모(57) 강력팀장은 관내 한 편의점을 나서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급 상황에서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7초 뒤 자동으로 경찰에 신고가 되는 ‘무다이얼링’ 전화를 통해 편의점에서 신고가 들어온 게 30분 전. 즉시 팀원들이 출동했지만 도착한 편의점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계산대를 정리하던 아르바이트생이 실수로 전화기를 건드려 저절로 신고가 된 것이다. 이 팀장은 “편의점 안전을 목적으로 무다이얼링 전화가 설치됐으나 강력팀장으로 근무한 4년 동안 제대로 된 신고가 접수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허탈해 했다.
해당 편의점에 설치된 전화는 ‘한달음 시스템’이라 불리는 긴급신고 수단이다. 야간에 강ㆍ절도 등 위급 상황 가능성이 높은 소규모 가게들을 위해 경찰은 2007년부터 전화기와 연결된 자동 신고 시스템을 운영해 오고 있다. 하지만 오작동이 잦아 경찰력이 불필요하게 동원되는 등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3만개 가까운 전국 편의점 중 한달음 시스템을 구비한 곳은 2만2,000여개.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편의점이 2만9,000여개니 웬만한 편의점에는 긴급전화가 한 대씩 설치돼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한달음 시스템이 긴급 신고의 기능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오신고율(2012년 기준)만 93%에 이른다. 원인은 대부분 점원의 실수다. 계산을 하거나 청소를 하다 자신도 모르게 수화기를 건드려 자동으로 신고가 되는 식이다.
실제 급박한 상황이 닥쳤을 때 한달음 시스템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서울 B경찰서 수사팀 박모(45) 경사는 “강도가 코앞에 흉기를 들이미는데 덥석 수화기에 손을 내밀 수 있는 점원은 없을 것”이라며 “편의점에서 문제가 생겨도 주로 범행이 끝난 뒤 신고가 접수된다”고 설명했다.
경찰도 이런 문제를 인식해 계산대 밑 버튼을 발로 눌러 신고하는 ‘풋 SOS’ 등 대안신고 체계를 개발했으나 보급률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무료인 한달음 시스템과 달리 설치비와 유지비가 들기 때문이다. 풋 SOS의 경우 2만5,000~7만5,000원의 설치비가 들고, 주머니 속 무선 호출기를 눌러 신고 하는 ‘비상벨시스템’ 역시 구입비 3만~4만5,000원에 월 유지비 3,000원을 별도로 내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발생 가능성이 높은 골목 편의점을 중심으로 풋 SOS를 홍보해도 가격이 부담돼 거부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게다가 편의점들이 범죄 피해에 대비해 가맹점 손실보험에 가입돼 있어 점주들이 설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것도 보급률이 낮은 이유로 꼽힌다.
때문에 피해는 상해보험조차 적용 받지 못하는 점원이나 아르바이트생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백모(23ㆍ여)씨는 “5개월째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긴급전화를 써본 적이 없다”며 “야간근무 시 취객만 들어와도 무서운데 몰래 신고할 수 있는 무료 장치가 곁에 있다면 훨씬 안심될 것”이라 말했다.
경찰이 최근 112 신고대응 단계를 세분화해 행정력 낭비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것처럼 자동신고 시스템도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은 2013년부터 편의점에 비상벨이나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면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방범인증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충분한 보상이 없어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금을 취급하는 편의점 특성을 감안해 별도 인센티브를 두거나 의무설치 규정을 만드는 등 시민 안전을 담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예산 부족으로 새로운 방범 시스템 보급이 더딘 것은 사실”이라며 “일선서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낮은 비용으로 장비를 보급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신혜정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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