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및 국책은행 간부 등이 대출브로커들로부터 뒷돈을 받고 기업 부실대출을 도운 대형 대출비리가 또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중견 터치스크린 제조업체인 디지텍시스템스는 지난 2012년 자본이 없는 기업사냥꾼들에게 인수된 뒤 급격히 부실화했다. 연이은 횡령과 주가조작 사건이 불거져 추가 대출은커녕 정상적 경영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회사를 인수한 기업사냥꾼들은 브로커들을 고용해 은행 등에 뒷돈을 풀었다. 그 결과 애초부터 상환 능력이 없는 부실기업에 2013년 1년 동안 1,160억 원의 막대한 대출이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대출이 성사된 건 기업사냥꾼과 대출브로커, 그리고 금융당국 및 은행 간부들을 잇는 비리의 ‘삼각 고리’가 작동한 탓이다. 디지텍과 손 잡은 대출브로커는 이모(42)와 최모(52)씨 등 4명이다. 이씨는 디지텍이 농협에서 50억원의 대출을 받도록 불법 로비를 해 준 대가로 2억7,000만 원의 성공보수를 챙겼다. 최씨도 디지텍이 수출입은행과 국민은행에서 각각 400억 원과 280억 원을 대출 받도록 움직이고 막대한 불법 수입을 챙겼다.
대출브로커의 로비가 은행에 통한 것은 해당 간부들에게 돌아간 뒷돈 때문이었다. 국책은행인 산은 팀장이 2,000만 원, 국민은행 전 지점장이 3,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한심한 건 그 와중에서 금융건전성을 감독해야 할 금감원 현직에 있던 강모 전 국장까지 나서서 감리 무마를 대가로 유모 디지텍 전 회장으로부터 3,300만 원의 현금과 상품권 등을 받아 챙긴 사실이다. 디지텍은 지난해 1월 상장 폐지돼 산업은행 218억 원 등 은행권 대출 855억 원은 사실상 회수가 어렵게 됐다.
3조원이 넘는 막대한 사기대출로 금융권 전체를 뒤흔들었던 모뉴엘 사건이 터진 게 불과 2년 전이다. 그 때도 금융당국와 은행들은 입을 모아 대출 관리 강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실사조차 없이 분식회계 등으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기업자료에 의존하는 은행권의 부실심사 관행이나, 대출브로커가 뒷골목에서 활개치는 금융권 내부의 비리구조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이 이번 사건으로 확인된 셈이다.
은행의 손실은 어떤 식으로든 일반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고, 부실이 극단화하면 공적자금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결국 국민부담으로 이어진다. 부실기업 대출이 금융자금의 흐름을 왜곡시켜 건전한 기업의 자금조달 기회를 빼앗아 가는 것도 큰 문제다. 부실대출 책임자에 대한 민ㆍ형사 책임을 철저히 따지고, 금융권 비리구조를 혁파할 지속적 쇄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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