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4월 5일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이 한국서는 달리 쓰이지만, 중남미에서는 80년대 경제위기를 환기하는 표현이다. 이식된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80년대 초 초인플레이션과 외채위기 경기침체 만성실업을 낳았다. 민영화 탈규제 재정긴축 사회복지 축소는 우파 정권의 부패와 포개져 빈부차를 심화했고, 잦은 쿠데타와 좌파 게릴라 무장투쟁으로 정치ㆍ사회 불안 역시 극심했다.
1990년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대통령에 당선될 무렵 페루가 딱 그랬다. 전임 대통령 알란 가르시아는 외채를 못 갚겠다고 선언했고 외국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원자재값은 폭락했고 소비자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민 1.5세 후지모리는 페루 국립농대와 미국 위스콘신대를 나온 농업 경제 전문가로, 80년대 국영TV 시사 토크쇼 진행자로도 유명했다. 89년 개혁 신당 ‘캄비오(Cambioㆍ변화) 90’의 대선 후보로 나선 그는 낡은 트랙터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당신과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선거 문구로 서민들의 지지를 얻어다. 독립 이래 줄곧 소수 백인들이 정ㆍ재계를 장악했던 만큼 피부색은 문제될 게 없었다. 오히려 경제강국 일본의 후광은 그를 더욱 빛나게 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신봉자였던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꺾고 62.4% 지지율로 당선됐다. 일본 외자 유치를 통한 재정적자 개선, 인플레 억제, 국제금융사회 복귀와 경기 회복…. 그의 인기는 드높았다.
하지만 그는 독재자였다. 헌법을 무시하며 3선을 꾀했고, 비밀 군사조직으로 정적을 납치ㆍ고문ㆍ살해했다. 도청과 부정선거, 공금 유용, 부정 축재…. 2000년 심복이던 국가정보국장이 야당의원을 매수하는 장면 비디오가 폭로된 뒤 그는 일본으로 도주했고, 2007년 칠레 정부에 의해 페루로 강제 송환됐다. 그리고 2010년 25년형을 선고 받고 투옥됐다. 몰락(독재)의 시작은 역설적이게도,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1992년 오늘(4월 5일)의 국회해산이었다.
24년이 지난 올해 4월 10일 페루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우파 후보로 나선 그의 장녀 게이코 후지모리의 당선이 유력하다. 그의 아버지는 법을 짓밟다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그 법은 독재자의 딸에게도 대통령의 길을 열어두고 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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