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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달 만에 이번엔 황산 테러… 유해 화학물질 관리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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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달 만에 이번엔 황산 테러… 유해 화학물질 관리 구멍

입력
2016.04.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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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 안 들어준다며 경찰에 뿌려

“인터넷에서 황산 구입” 진술

농도 9.9% 제품 판매 규제 없어

온라인 쇼핑몰ㆍ약국서 쉽게 구해

경찰서 한복판에서 민원인이 경찰관에게 황산을 뿌려 다치게 하는 ‘황산 테러’ 사건이 또 일어났다. 지난해 황산ㆍ염산을 이용한 범죄가 잇따르면서 일반인의 구입을 제한하는 조치까지 마련됐지만 다시 끔찍한 테러가 발생해 유해화학물질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 거세다.

황산 뿌려 경찰관 부상 입힌 분노범죄

4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45분쯤 경찰서 3층 복도에서 전모(38 ㆍ여)씨가 사이버수사팀 박모(44) 경사에게 황산 250㎖를 뿌렸다. 얼굴 3분의2 부위에 황산을 뒤집어 쓴 박 경사는 얼굴에 2도 화상, 목에 2,3도 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전씨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다른 경찰관 3명도 황산이 손등 등에 튀어 다쳤다. 피의자 전씨는 현장에서 긴급체포 됐다.

조사 결과 전씨는 이별 뒤에도 계속 찾아오고 문자를 보낸다는 이유로 2013년 전 남자친구를 사이버수사팀에 고소하면서 박 경사를 처음 알게 됐다. 박 경사의 상담 덕분에 사건이 무난히 종결됐다고 생각한 전씨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러다 올해 2월 거주지인 원룸 아래층 유리창을 깬 혐의로 경찰의 출석 요구를 받자 계속 불응하던 전씨는 해당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박 경사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박 경사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하자 불만을 품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씨는 박 경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이날 과도까지 소지한 채 경찰서에 들어가 사이버수사팀 사무실에서 욕설을 하며 난동을 부렸다. 경찰들이 전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복도로 데리고 나가자 보온물병에 담아 온 황산을 던진 것으로 확인됐다.

전씨의 행동은 전형적인 ‘분노범죄’였으나 흉기가 된 황산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지난해 11월 인터넷에서 구입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전씨의 카드사용 내역을 확인한 결과, 한 오픈마켓에서 황산 500㎖를 결제한 기록이 나왔다.

저농도 유해화학물질도 인체에 위험

문제는 그가 인체에 해를 가하는 황산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강한 산성을 띄는 황산ㆍ염산은 몸에 닿으면 화상, 안구에 닿을 경우 시력 상실을 초래하는 고위험 화학물질이다. 현재 농도 10% 이상의 황산ㆍ염산의 구입은 비교적 통제가 잘되고 있다. 일반인이 구입하려면 신원 확인과 함께 구매 목적, 분량 등을 기재해야 한다. 온라인에서도 엄격한 실명인증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요즘 테러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농도 10% 이하의 ‘묽은 산’이다. 지난해 8월 충남 보령시에서는 40대 남성이 약국에서 염산 6통을 구입해 변심한 전 여자친구에게 뿌린 사건이 발생했다. 한 달 뒤 경기 광주시에서도 여자친구의 이별통보에 앙심을 품은 30대 남성이 염산이 든 우유팩을 던져 화상을 입혔다. 모두 농도 9.9%짜리 저농도 황산ㆍ염산이었지만 상대에게 피해를 주기엔 충분했다.

저농도 황산ㆍ염산은 관리체계도 허술한 편이다. 현행 화학물질관리법상 ‘사고대비물질’로 분류되는 두 물질의 농도는 10% 이상이기 때문에 농도가 그 미만일 경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 쇼핑몰과 일반 약국에서는 9.9% 농도의 황산ㆍ염산을 별다른 제약 없이 구할 수 있다. 이날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서 “화장실 청소용으로 쓸 염산이 필요하다” 고 말하자 약사는 지체 없이 빨간 통에 담긴 농도 9.9%의 염산 한 통(400㎖)을 건네줬다.

온라인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환경부는 관련 범죄가 잇따르자 지난해 11월 유해화학물질이 불법 판매되지 않도록 대형 온라인 쇼핑몰 3사와 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가 접촉한 소규모 자재용품 판매 사이트에서는 실험용ㆍ공업용 농도 10%짜리 염산도 얼마든지 구입이 가능했다.

전문가들은 저농도 황산ㆍ염산도 인체에 손상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인철 연세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청소할 때 쓰는 9.9% 농도의 황산ㆍ염산도 충분히 화상을 입힐 수 있는 수준”이라며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강산성 물질에 대한 규제가 강해 농도가 6% 이하인 경우에만 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피부를 녹여 버리는 농도 35% 이상의 황산을 3배 희석했다 해도 당연히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해화학물질을 범죄 수단으로 삼는 분노범죄가 늘고 있는 만큼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묵 화학물질안전원 정보화기획팀장은 “화학물질 판매자와 제조업자, 사용자 등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개인이 범죄에 이용하려 맘을 먹으면 막을 도리가 없다”며 “시중에 판매하는 약품의 농도를 조정하거나 온라인 판매 시 용도를 확인하는 등 추가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신혜정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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