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문학판을 휩쓴 문학권력 논란은 어찌 보면 서울 메이저급 출판사 중심으로 돌아가는 문단 시스템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모악을 시작한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상업적 목적을 위해 책을 출판하는 풍토에 대한 반성 혹은 자구책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전북 전주의 모악 출판사가 첫 발을 내디뎠다. 안도현 시인 등 전북 출신 문인 20여명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문을 연 지역 출판사다. 4일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모악의 첫 책 ‘헛디디며 헛짚으며’를 낸 정양 시인과 안도현, 문태준, 박성우 시인, 출판사 대표를 맡은 출판인 김완준씨가 자리했다.
출판사 창립 과정에서 문인이 참여하는 경우는 있지만 문인들끼리 지역에서 출판사를 차린 경우는 흔치 않다. 안도현 시인은 “전주에도 출판사나 문예지가 있긴 하지만 기획출판 개념이 없고 대부분 자비 출판”이라며 “주류 출판사에서 나오지 못해 사장되는 좋은 글들을 꾸준히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안 시인은 “자본금은 1억원 정도”라며 “작게 시작하지만 메이저 출판사에 못지 않은 원고료를 지급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모악은 시, 소설, 산문 등 문학서를 중심으로 문학의 저변 확대에 필요한 입문서와 청소년 책들을 함께 펴낼 계획이다. 올 여름엔 엄경희, 권혁웅, 정끝별 시인 등이 집필 중인 시 작법 시리즈가, 내년엔 송찬우 시인의 어른을 위한 동화가 나온다.
모악시인선은 모악의 시작을 알리는 시집 시리즈로, 문태준, 손택수, 박성우 세 시인이 기획위원을 맡아 작품을 선정한다. 첫 작가로 낙점된 정양씨는 평생 전북에서만 활동해 중앙 문단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1942년 김제에서 태어나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은 해방과 한국전쟁, 유신정권 등 고통스런 한국 근현대사를 겪으며 이를 시에 녹여왔다. 시집 1부의 제목을 ‘응답하라 1950’이라 지은 정 시인은 “요즘 정권의 역주행 덕분인지 1950년대 황량했던 내 중고등학교 시절이 자꾸만 회상된다”며 “어이없고 황당한 역주행의 시절이 어서 마감되고 모악에도 강호제현의 따뜻한 마음이 다투어 모여들기를 빈다”고 말했다.
문태준 시인은 “(지역 출판은) 아주 척박한 땅에 종자를 심는 것과 같은 일”이라면서도 “출간 기회를 얻기 힘든 시인들과 좋은 인연을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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