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맑은 하늘과 신선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볕만으로도 심장이 뛴다. 밖으로 자꾸 몸이 향할 때이니 극장가는 자연 비수기다. 영화를 멀리할 때라지만 영화로 봄 마중에 나설 만도 하다. 만사가 귀찮은 직장인들이 휴일 집안 소파에 파묻혀 느긋이 창 너머 풍경을 즐기다 눈을 화면으로 향해도 좋다. 게으름도 하나의 호사이니까. 봄바람에 살랑거릴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할 영화 5편을 소개한다.
꽃피는 봄이 오면(2004)
꿈을 이루지 못한 교향악단 트럼펫 연주자와 꿈 없이 살아가는 불우 청소년의 교감을 담아낸 영화다. 강원도 도계의 한 중학교 관악부 임시 교사로 임명된 현우(최민식)와 학생들을 붓 삼아 폐광촌의 봄을 그린다. 관악으로 화합하며 희망을 품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싱그러운 봄기운을 전한다. 최민식이 보기 드물게 부드러운 성격을 지닌 인물을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봄밤과 벚꽃을 배경으로 흐르는 트럼펫 선율이 따스하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의 죽음이 전해진다. 부모 없이 삶을 건사해가던 세 자매는 오랫동안 마주하지 못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배다른 동생과 첫 대면을 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네 자매의 동거. 일본의 바닷마을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영화는 살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다. 사시사철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이나 정서는 봄기운이 강하다. 새로운 인연을 맺고 새 삶을 도모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젖어 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감성 어린 연출이 빛을 발하는 작품.
4월 이야기(1998)
대학 신입생의 눈으로 계절에 기대 인생의 봄을 세묘하는 영화다. 일본 북단 홋카이도 출신으로 대학 진학을 위해 도쿄에 온 우즈키(마츠 다카코)가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도쿄 변두리 동네에 살며 소소한 사건을 겪던 우즈키는 동네 서점에서 일하는 한 젊은 남자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 우즈키는 남자에게 용기 내어 인사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이와이 순지 감독의 초기작으로 67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 안에 젊은 날의 설렘과 인생의 우연, 오해 등을 담아낸다. 4월 이야기라는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치고 가는 영화다.
건축학개론(2012)
대학 신입생의 풋풋한 사랑을 그렸다. 계절을 봄만으로 명시하지 않으나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대학에 막 입학한 승민(이제훈)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서연(수지)에게 호감을 품는다. 승민과 서연은 곧 친구와 연인의 경계선에 선 사이가 되나 어느 날 생긴 오해로 이별을 한다. 15년 뒤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승민을 서연이 찾아오면서 첫 사랑의 아련한 추억이 승민의 가슴에서 피어난다. 이제훈과 수지에게 전국적 인지도를 안겨준 작품. 승민과 서연이 건물 옥상에서 이어폰을 나눠 함께 음악을 들으며 봄 햇살을 맞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봄날은 간다(2001)
떠난 사랑이 떠오를 때, 가는 봄이 사무칠 때 제목만으로도 가슴을 누르는, 봄 영화의 백미다. 강원도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이영애)와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는 은수의 담당 프로그램을 위해 녹음 여행을 떠났다가 사랑에 빠진다. 둘은 깊은 사이가 되나 이혼의 상처가 깊은 은수는 상우와의 결혼을 부담스러워 한다. 시간은 흐르고 사랑이 조금씩 식으며 두 사람은 자연스레 이별을 하나 상우는 은수를 잊지 못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상우의 대사만으로도 오래 기억될 영화다. 허진호 감독의 감수성과 두 배우의 호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빚어낸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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