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후보자들 불러 토론회 열고
반값등록금ㆍ일자리 등 공약 평가
구체적 실현 계획까지 송곳 질문
투표 참여 독려… 판세 영향 줄 듯
“총선이 끝나면 청년 이슈는 정치권에서 다시 사라질 겁니다. 후보님들이 당선되면 나머지 의원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2일 오후 2시 서울대 자연과학대 한 강의실. 서울대 재학생 이동현씨가 연단에 앉은 5명을 향해 청년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에 그치지 않기 위해 어떤 실천 계획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청년정책을 실현하려 청년인 나를 공천했다”(원영섭ㆍ새누리당) “20대 국회가 개회하자마자 공약을 정책화할 준비가 돼 있다”(유기홍ㆍ더민주) “18대 국회 때 1호 법안을 낸 게 나다”(김성식ㆍ국민의당) 등 저마다 청년의 대변자임을 자임하는 대답이 쏟아졌다.
이들은 4ㆍ13 총선에서 서울대가 있는 관악갑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들이다. 하지만 함께 자리한 60여명의 청년들은 그저 “잘하겠다”는 말만 되뇌는 답변이 마뜩지 않은지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으라며 후보들을 몰아 세웠다. 서울대 2학년 이좌성(22)씨는 “주거 이슈에 관심이 많아 참석했는데 ‘국민연금 재원을 활용해 임대주택을 늘리겠다’는 식의 아이디어만 나와 아쉬웠다”며 “당장 치솟는 월세에 고민하는 대학생이 태반인데도 후보들만 우리가 정말 원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청년 문제는 4ㆍ13 총선의 화두다. 이날 서울대 총학생회가 마련한 ‘청년이 묻고 후보자가 답하다’ 토론회에는 관악갑 기호 1~5번인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민중연합당 후보가 모두 참석했다. 그만큼 청년 표심의 풍향계가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N포세대, 헬조선, 금수저ㆍ흙수저’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총선을 앞두고 행동을 시작했다. 청년들은 후보자 공약을 듣고 평가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또 직접 거리로 나가 같은 처지의 청년들에게 투표의 힘을 보여주자며 독려하고 있다.
45개 대학 총학생회와 15개 청년단체로 구성된 ‘대학생ㆍ청년 공동행동 네트워크’는 1일 각 정당 청년 비례대표들로부터 정당의 정책과 입장을 들어보는 토론회를 개최했고, 20여개 청년단체가 모인 ‘총선청년네트워크’도 지난달 31일 노동ㆍ주거ㆍ교육 등 10개 분야에 걸친 청년정책 12개 공동요구안을 발표했다. 총선청년네트워크는 2일 청년들에게 총선 투표를 독려하는 ‘보터데이(VOTEr DAY)’ 행사를 열기도 했다.
청년 표심은 종전 선거와 달리 단순한 구호나 일회성 행사에 머물지 않고 있다. 이날 청년들이 던진 물음은 대학생ㆍ청년 공동행동 네트워크가 발족하면서 발표한 공동의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값등록금 실현 ▦최저임금 1만원 보장 ▦청년 실업수당 및 일자리 확보 ▦공공임대주택 청년배당 확대 등 다양한 청년 이슈를 주제별로 나눠 일목요연하게 정책화한 것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문지선(30)씨는 “이전에는 정당 이미지만 갖고 투표했는데 막상 후보자들의 입장과 정책을 직접 들으니 생각이 바뀌었다”며 “비정규직에 월세살이를 하고 있는 청년 입장에서 반드시 한 표를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정치권에 냉소만 보냈던 청년 세대가 각 정당이 내건 공약에 대한 합리적 평가자로서 힘을 발휘한다면 선거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년ㆍ대학생이 정책 참여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우리 정치의 미래가 밝다는 증거”라며 “이번 총선에서 20, 30대 투표율이 75%가 넘을 경우 앞으로 일자리와 교육, 육아 등 청년 민생 현안을 놓고 정치권이 고민하는 선의의 경쟁 구도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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