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는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과 정면대결을 펼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급 브랜드다. 재규어 모델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주력 제품은 스포츠 세단의 유전자(DNA)를 이어 받아 폭발적인 가속성능과 날렵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XF다.
8년 만에 완전변경 모델로 단장하고 국내에 출시된 올 뉴 XF를 지난달 30일 전남 여수와 지리산 일대에서 시승했다. ‘스포츠 세단’이란 수식어를 지난해 나온 한 체급 아래 XE에 물려주고 이제는 안락한 승차감의 고급 ‘비즈니스 세단’을 지향하고 있지만 질주하는 재규어를 연상시키는 XF의 날렵한 디자인만큼은 여전했다.
정체성에 변화가 생긴 XF의 실내는 대시보드 상단까지 천연가죽으로 덮으며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뒷좌석 공간도 15㎜ 늘어 여유로웠고, SUV처럼 분할해 접을 수 있는 뒷좌석 시트 덕에 짐도 넉넉히 실을 수 있다.
가솔린 터보 엔진이 탑재된 XF 25t 프레스티지 모델에 앉아 시동을 켜니 변속 조절 레버 자리에 동그란 조그 셔틀이 쑥 올라왔다. 최근 나오는 재규어 모델처럼 다이얼을 돌려 변속하는 시스템이다.
25t 프레스티지는 4기통 엔진에 배기량이 2.0ℓ에 불과한데도 최고출력은 240마력이다. 게다가 차체가 알루미늄으로 제작돼 이전 XF보다 190㎏이나 가벼워졌다. 가속페달은 약간 뻑뻑했지만 차체는 경쾌하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다만 사륜이 아닌 후륜구동이라 고속 주행에서는 다소 흔들림이 느껴지기도 했다.
12.3인치 풀 HD 가상 계기판은 운전 모드에 따라 저절로 바뀌었다. 일반 모드에서는 속도계가 가운데, RPM 게이지가 오른쪽에 있지만 가속력이 높은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RPM 게이지가 가운데로 이동했다. 속도보다 RPM 위주의 운전을 하라는 의미다.
올 뉴 XF는 전 모델에 ‘토크 벡터링(Vectoring)’이 적용됐다. 회전구간에서 속도를 높일때 안쪽 바퀴를 약간 제동하면서 바깥쪽 바퀴가 안정적으로 주행하게 하는 기술이다. 체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고속으로 회전구간을 통과할 때 심리적 안정감은 컸다.
2.0ℓ 디젤 엔진을 쓰는 20d 포트폴리오는 가솔린 엔진 모델에 비해 출력이 떨어지지만 부드럽고 안정적인 주행이 돋보였다.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가 국내에서 기대를 거는 모델도 가솔린보다는 디젤이다.
올 뉴 XF가 국내에서 경쟁해야 하는 차는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다. 이중 E클래스는 6월쯤 완전 변경된 신차가 국내에 상륙한다. XF 입장에서는 이 강적과 맞붙어 ‘영국의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