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고사리 채취
중산간에 새벽부터 사람들 몰려 진풍경
고사리 꺾는 ‘손맛’에 길 잃는 사고 급증
잘 말린 제주 고사리 쇠고기보다 더 비싸
제주에 샛노란 유채꽃과 연분홍빛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봄이 되면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목장들을 비롯해 오름(기생화산), 곶자왈(용암숲지대) 등지에는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드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제주 고사리 때문이다.
제주 중산간 도로 곳곳에는 아침 일찍부터 고사리를 꺾기 위해 타고 온 승용차들이 이어지면서 도로 양쪽이 순식간에 주차장으로 변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최근에는 관광객들이 고사리를 꺾기 위해 제주를 찾는 ‘고사리 투어’까지 있을 정도다.
‘메뚜기도 한철’인 것처럼 제주 고사리도 한철이다.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한달정도만 고사리를 꺾을 수 있다. 5월 하순에 들면 고사리의 잎이 피고 줄기가 단단해지면서 맛이 없어진다. 노인들은 고사리가 햇빛을 많이 받으면 독이 올라 아예 먹을 수 없다고도 한다.
제주에는 ‘장마’가 두 번이나 찾아온다. 6월말부터 시작되는 여름 장마 이전인 4월 중순부터 제주에는 비가 자주 내리는데, 이 비를 맞으면 고사리가 잘 자라기 때문에 제주사람들은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음지에서 자생하는 양치식물인 고사리는 제주 한라산 일대에 많이 자란다. 고사리는 잎이 곧게 피지 않고 동그랗게 말려있는 새순을 꺾는다. 연한 줄기가 톡톡 꺾이는 ‘손맛’을 보면 쉽게 잊지 못해 매년 봄을 기다릴 정도다.
제주 고사리는 예로부터 ‘귈채’라 불리며 임금에게 진상을 올릴 정도로 쫄깃하고 뛰어난 맛과 향기를 자랑한다. 가격도 꽤 비싸다. 고사리는 삶고 말리면 그 양이 10분의 1로 줄어든다. 1㎏을 꺾어야 겨우 100g의 고사리를 얻은 수 있는 셈이다. 제주 고사리가 비싸고 귀한 이유다. 잘 말린 제주 고사리는 쇠고기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팔린다. 고사리철에 부지런을 떨면 짭짤한 부수입이 생기기 때문에 제주사람들은 너도나도 새벽부터 산으로, 들로 나간다.
고사리를 좀 꺾는 ‘선수’들은 혼자 움직인다. 좋은 고사리가 잘 자라는 저마다의 ‘포인트’가 있기 때문이다. 며느리에게도 잘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포인트가 아니더라도 고사리철에는 제주 들녘 곳곳에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제주 고사리로 만든 음식 중에는 돼지고기 고사리국이 으뜸이다. 제주도 육개장으로 알려져 있는 돼지고기 고사리국은 다른 지방의 육개장과 사뭇 다르다. 쇠고기인 양지머리나 사태, 굵은 파를 주재료로 하는 일반적인 육개장과 달린 제주 육개장은 고사리와 돼지고기가 주재료다.
또 매년 고사리철이 되면 덩달아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고사리 꺾기에 열중하다 숲 속이나 무성한 수풀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 제주에서는 매년 4월이 되면 ‘고사리철 길 잃음 사고 안전주의보’가 발령돼 소방관들과 경찰들이 비상근무에 돌입한다.
실제로 최근 3년간 발생한 365건의 ‘길 잃음’ 사고 가운데 절반 이상이 4∼5월에 집중됐고, 이 중 고사리를 채취하다 길을 잃은 사고는 전체의 절반인 183건(50.3%)에 이른다. 때문에 고사리를 꺾으러 나갈 때는 반드시 일행을 동반하고 휴대전화, 호각 등 연락 가능한 장비를 반드시 휴대해야 한다. 또 고사리를 꺾다가도 한번씩 수풀 속에서 일어나 자신의 위치를 계속 확인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안전하게 고사리 꺾는 ‘손맛’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4월23일부터 24일까지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국가태풍센터 서쪽 일대에서는 제21회 한라산 청정 고사리축제가 열린다. 제주 대표 특산물인 ‘고사리’를 알리기 위해 1995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서귀포 대표 축제다.
축제에서는 고사리 꺾기 체험을 비롯해 고사리 제조과정 시연, 고사리 음식 만들기 체험, 고사리 생태 체험관 운영, 고사리 가요제 등을 열고 도민과 관광객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된다.
봄철 제주를 찾는다면 시간을 내서 중산간을 찾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고사리를 꺾어보자. 또 다른 제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 길은 잃지 말자.
김영헌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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