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경기 이천 소재 오리농장에서 올해 들어 처음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확진)했습니다. 정부가 AI 청정국 지위 회복을 선언(2월28일)한 지 불과 한 달 만이죠.
이번에 발생한 AI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유형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겁니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AI의 혈청형은 모두 H5N1이었는데 작년부터 H5N8로 변형된 겁니다. 기본적으로 AI 바이러스는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단백질 헤마글루티닌(H)과 뉴라미니다제(N)가 각각 하나씩 결합해 발생하는데요, H와 N이 각각 9개, 16개라 총 144가지 방법으로 결합될 수 있습니다. 이 중 고병원성으로 분류되는 H5, H7과 결합한 바이러스는 조류 폐사율이 75%에 달합니다.
이번에 발생한 H5N8도 H5가 N8과 결합한 사례라 고병원성으로 볼 수 있는데요, H5N8은 H5N1보다 병원성은 다소 약하지만 조류의 체내에서 배양되는 바이러스의 양이 적게는 100배, 많게는 1,000배에 달합니다. 쉽게 말해, H5N8형 바이러스게 감염된 개체는 H5N1형에 감염된 개체보다 증상이 늦게 나타나거나 바이러스를 이겨낼 확률이 높은 대신, 감염된 기간 동안 죽지 않고 바이러스를 배양해 다른 개체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실제 과거 피해규모를 보면 H5N1이 주종이었던 ▦2003~2004년(정부지원액 874억원) ▦2006~2007년(339억원) ▦2008년(1,817억원) ▦2010~2011년(807억원) 사례에 비해, H5N8이 원인이 된 2014~2015년 발병에서의 정부지출액(피해액)이 2,386억원으로 더 큽니다.
특히 H5N8은 오리에게서 병원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증상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데요, 이 때문에 겉으로 보기만 해서는 바이러스가 얼마나 퍼졌고, 몇 마리가 감염됐는지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즉시 증상을 나타내거나 폐사하는 닭과는 다른 부분이죠. 이번에 발생한 AI도 해당 농가에서 신고한 것이 아니라 종오리 농장에 대한 정부의 예찰검사 과정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H5N8은 아직 인간 감염 사례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인간이 고병원성 AI에 감염된 건수는 지난 10년간 648건으로 그 중 384명이 사망했습니다. 치사율이 무려 68%에 달합니다. 통상 계절적 독감의 사망률이 0.1% 미만인 것을 감안하면 AI는 인간에게도 엄청난 고병원성인 셈이죠.
통계에 잡히지 않은 예전에도 AI는 다양한 변이를 통해 사람에게 전파됐습니다. 5,000여명이 사망해 역사상 최악의 독감으로 기록된 1918년 스페인 독감은 H1N1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사람 간 감염성을 획득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고, 70만명이 사망한 아시아 독감(1957년)도 인간독감바이러스와 AI바이러스가 돼지에 동시 감염되면서 변이돼 인체에 감염성이 있는 바이러스로 변형된 겁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1968년 100만명이 사망한 홍콩독감도 AI 바이러스가 다른 바이러스와 결합해 사람에게 전이되며 발생했죠. 아직까지 H5N8의 인간감염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른 게 사실입니다.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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