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이야기다. 나보다 앞서 걸은 이가 지금 걷는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길이다. 지금 여기 없는 당신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길은 이어지고 그러면서 당신과 나는 이어진다. 지금 여기 없는 당신이 그리운 날, 길을 걷는다. 길 끝에 당신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를 다독이며 끝없을 길을 걷는다.
초량은 부산역 일대다. 부산역과 부산역 맞은편이 초량이다. ‘이바구’는 이야기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초량이바구길은 부산역 맞은편 평지에서 산복도로 고지대에 이르는 이야깃거리 넘치는 길을 말한다. 이야기는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고 평지와 고지대를 아우른다. 귀 기울여 들으면 숭늉 맛이 난다.
이바구길 시작은 도시철도 부산역 7번 출구다. 출구에서 나와 샛길로 들면 붉은 벽돌 5층 건물이 저만치 보인다. 1922년 문을 연 부산 첫 근대식 민간병원으로 이바구 덩어리다. 병원에서 중국 요릿집으로, 일본군 장교 숙소로, 치안대 사무소로, 중화민국 영사관으로 전전하면서 겪는 애환은 소설책 열 권 분량이다.
병원 건물 뒤는 남선창고 터다. 부산 첫 창고로 함경도 명태를 보관했다 해서 명태고방으로 불렸다. 명태고방 다음 행선지는 초량초등학교다. 이정표가 따로 없어서 물어봐야 한다. 초등학교 담벼락 전시관, ‘일출봉에 해 뜨거든’ 김민부 전망대,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168계단, 이바구공작소, 우리 시대 슈바이처 장기려 기념관, 유치환 우체통 등등이 이름값을 한다.
‘168도시락국’과 ‘6·25막걸리’는 추억의 맛집이다. 이바구길을 걷다가 배고프거나 목마르면 지갑 걱정하지 말고 성큼 들어서자. 노인 일자리 식당이라서 값이 노인 표정 마냥 인자하다. 이바구 할머니 손맛이며 입담이 구수하다. 168도시락국은 양은도시락, ‘시락국’을 팔고 6·25막걸리는 걸쭉한 막걸리, 해물파전, 도토리나 오징어무침 같은 걸 판다. 천 원짜리 막걸리 한 잔만 마신들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다.
초량이바구길은 가파르다. 부산말로 ‘가꼬막’이라 금방 지친다. 대안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산복도로 만디버스’나 7번 출구에서 ‘이바구 자전거’를 타면 편하다. 만디버스는 이바구길을 지나 부산 산복도로 구석구석 다닌다. 인력거가 연상되는 이바구 자전거는 연애하는 기분이 들어 좋다. 각각 왕복 1시간, 성인 기준 1만 원. 자세한 것은 인터넷에 나온다.
대안은 또 있다. 부산역에서 출발해 산복도로를 거쳐 부산역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 333번이다. 부산 산복도로를 제대로 걷고 싶다면, 부산항이며 시가지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333번을 타고 중앙공원 민주공원에서 내릴 것! 버스 왔던 길을 되돌아 유치환 우체통까지 등짝에 땀내 날만큼 걸오 보자. 평지라서 걷기는 수월하다. 우체통 아랫길로 내려가면 부산역이다.
부산 산복도로는1950년 6·25전쟁 산물이다. 조선팔도 피난민이 산비탈에 판잣집 지어 살게 되면서 길이 생겼고 다니는 사람이 늘면서 길은 넓어졌고 넓어진 길로 차가 다니면서 산복도로가 등장했다. 차가 다니기 전 산동네 판자촌 사람들은 일거리를 찾아 가파른 계단을 매일같이 오르내렸다. 보기만 해도 후들거리는 168계단도 개중 하나다. 삶은 고단했지만 삶의 끈은 단단히 붙들고 살았던 산복도로 사람들. 어두울수록 빛나는 밤하늘 별과 같은 그들을 생각하며 산복도로를 걸으면 누구라도 생각이 깊어진다. 어두울수록 빛나는 부산 야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 산복도로다.
동길산 시인 dgs1116@hanmail.netㆍ부산관광공사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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