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문제는 경제’의제 선점 불구
강봉균의 거센 반박을 압도 못해
경제민주화 프레임 갇힌 외연 한계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양적 완화론을 꺼냈을 때 우선 황당했다. 그건 양적 완화 주장 자체가 터무니없어서는 아니었다. 많은 선진국이 채택했고, 우리나라도 중앙은행이 지금보다 좀 더 경기부양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꽤 많기 때문에 양적 완화는 충분히 고민해볼 만한 의제다.
다만 공약이 되는 건 별개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그냥 돈을 푸는 게 아니라 특정채권 매입으로 구조조정에 돈을 투입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그렇다 해도 결국은 ‘한국은행이 돈을 더 찍도록 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금융통화위원회에 아무리 ‘비둘기’가 많다 해도,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만큼 무력하지는 않다. 거시 프레임을 바꾸는 이런 큰 작업은 토론의 주제이지 결코 공약의 대상은 될 수 없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경제관료 출신인 강봉균 위원장도 양적 완화가 공약으로 적절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걸 잘 알 거다. 그런데도 이 얘기를 꺼낸 건 무슨 연유일까 생각해봤는데 내 나름의 결론은 ‘그냥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려는 거다’였다. 경제원로로서 진솔한 걱정인지, 자신을 내쳤던 더민주당에 대한 감정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야당과 야인생활을 거치면서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주장을 이번 기회에 다 쏟아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새누리당의 금기인 증세문제까지 거침없이 건드리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새누리당으로선 부담스러운 면도 있겠지만, 종합적으로 계산해보면 득이 커 보인다. 어쨌든 강봉균 위원장의 거침없는 발언이 이어지면서 막장공천으로 정점에 달했던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돌려놓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김종인 더민주당 선대위원장을 직접 겨냥해 연일 아주 공격적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경제이슈에 관한 한 ‘강봉균 vs 김종인’의 1대1 논쟁구도가 형성됐다. 계파 보스 혹은 중간 보스들만 즐비할 뿐 경제 전문가가 전무한 현 새누리당 지도부로선 김종인 위원장과 ‘맞짱’을 뜰 수 있는 최적의 대항마를 확보한 셈이다.
사실 이번 총선 쟁점을 경제로 끌고 간 건 김종인 위원장이었고 그 판단은 옳았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박근혜정부 3년간 경제가 최악이었던 건 수치로 증명된다. 보수성향의 많은 경제전문가들도 창조경제에서 초이노믹스, 국회책임(야당발목)론으로 이어진 현 정부의 일하는 방식과 경제 성과에 대해선 극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1992년 빌 클린턴 대선캠프에서 차용한 콘셉트이긴 하지만 김종인 위원장의 ‘문제는 경제다’는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기반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파괴력 있는 무기였다.
답답한 건 그 다음이다. ‘경제가 문제’라고 했으면서도 한발 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게 ‘김종인 위원장의 문제’다. 그는 자신의 오랜 브랜드인 경제민주화론를 또다시 꺼냈는데, 그 순간 모든 게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뭔가 끌리는 이름의 메뉴를 주문했는데 막상 나온 음식은 예전 그대로인 듯한 느낌. 경제민주화가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된 논쟁이라 이젠 피로감을 주기 때문이다.
속칭 ‘친노 운동권’식 사고와 행태로는 더민주당의 외연을 넓힐 수 없다고 강조해온 게 김종인 위원장이다. 공천을 통해 그 의지를 관철시켰다. 하지만 사람을 바꿨으면 내용물도 좀 바꿔야 하는데, 들여다 보면 여전히 ‘기-승-전-경제민주화’다. 이렇게 해서 과연 외연확대가 가능할는지. 경제가 문제라고 의제를 선점했으면서도 강봉균 위원장과의 논쟁에서 김종인 위원장이 압도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 역시 결국은 옛 경제민주화 담론에서 크게 변한 것도, 추가된 플러스 알파도 없기 때문이다.
남은 선거를 ‘강봉균 대 김종인’의 대결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모두 경제대가들이라 한국경제 미래를 위한 새로운 관점, 새로운 처방이 나오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그건 힘들 것 같다.
/이성철 부국장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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