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공천 싸움을 끝낸 정치권이 허황된 ‘장밋빛 공약’을 쏟아내며 표심을 흐리고 있다. 선거공약은 정당의 정체성과 정책방향을 국민 앞에 성실히 밝힘으로써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을 도와야 한다. 하지만 여야는 최근 실현 가능성이 없는 ‘황당 공약’, 다른 당의 인기공약을 무턱대고 흉내 내는 ‘차용 공약’, 이미 추진 중인 얘기를 새것처럼 가공한 ‘재탕 공약’ 등을 남발해 혼란을 부르며 정치적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 선대위원장부터 논란을 불렀다. 강 위원장은 최근 ‘한국형 양적 완화’를 사실상 총선공약으로 꺼내 들었다. 골자는 주택대출 상환기간을 20년까지 늘려 가계빚 부담을 완화하고,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각각 주택대출채권 및 산은채를 사들이자는 구상이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엄연한 한은의 독립성을 무시하고 충분한 논의도 없이 불쑥 통화정책을 공약화하는 건 오히려 문제를 꼬이게 한다는 지적이 많다.
“법인세 인상, 논의 못할 건 없다”는 강 위원장의 또 다른 발언도 문제다. 법인세 인상 공약을 내세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맞불작전’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 내 법인세 인상 불가를 고집해온 새누리당의 기조를 감안할 때 기만적인 시늉에 불과하다. ‘U턴 경제특구’를 설치해 매년 5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거나, 서울 서부 광역철도 신설 등 새누리당의 다른 공약들도 이미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거나, 추진 중인 재탕, 삼탕공약으로 욕 먹어도 싸다.
더민주 역시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지론과 관계없는 포퓰리즘 공약을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포장해 남발하고 있다. 소득 하위 70% 어르신의 기초연금과 사병 월급을 각각 3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얘기 등은 가뜩이나 복지지출로 위기에 빠진 재정상황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공약이다. 혼선을 드러낸 국회 세종시 이전이나 국정원 폐지 공약도 실현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더민주의 경제ㆍ복지공약은 향후 4년 간 약 148조원의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도 조달 대책은 결여해 불신을 사고 있다.
국민을 현혹하는 공약거품을 제거하고 보면 여야의 정책 차이는 여전하다. 새누리당은 ‘파이를 키우면 나눌 몫도 커진다’는 것이고, 더민주는 ‘이젠 파이를 제대로 나눠야 할 때’라는 것이다. 파이가 더 커져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면 국민은 배고프다. 그렇다고 나눠먹을 몫만 신경 쓰다간 나라 전체가 쪽박 찰 위험도 없지 않다.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않는 유권자의 지혜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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