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은일(隱逸)과 먼 칩거
기다렸을 野 상황 변화 시작
욕심 버렸다면 지금 귀환해야
선거는 역시 선거다. 여야, 특히 여당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당내 권력투쟁의 실상에 따른 유권자의 실망이 역대 총선 최악의 정치 무관심으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막상 선거전이 불붙자 곳곳의 표심이 꿈틀거리며 정치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변수는 여럿이다. 여당 내부 갈등에 따른 대구ㆍ경북(TK) 지역의 동요, 그에 따른 수도권 판세의 변화, 야권 분열과 지역구별 선거 연대 작업 등을 우선 꼽을 만하다. 전국적 변수는 아니지만, 최대 각축장인 수도권 지역의 야권 지지자에 대한 영향력에 비추어 손학규 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대표의 정계 복귀 여부도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로는 손 전 대표의 행보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기자로서의 인연 때문이다. 2006년 6월 ‘지금 이 땅에 필요한 리더십’이란 칼럼을 통해 국민 다수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합리적 지도력, 사회적 중간층의 의사를 존중하는 중도 노선, 실용주의적 개혁노선을 2007년 대선 후보의 요건으로 꼽았다. 그리고는 손학규 당시 경기 지사만이 그런 기준을 충족한다고 썼다. 물론 그가 본선 출발선에도 서기 어려운 정치현실도 지적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그의 한나라당 탈당 소식에 ‘손학규 전 지사께’라는 칼럼에서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기다리지 못하는 그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 이후 그의 행로는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2007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정동영 후보, 2012년에는 문재인 후보에게 잇따라 졌다. 두 차례의 정계은퇴와 칩거가 모두 그 결과였다. 밖에서는 대선 후보로서의 그의 경쟁력이 오랫동안 야당 내 으뜸으로 꼽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결에서도 승산이 점쳐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야당 내부의 의사와 조직은 달랐다. 그의 중도개혁 노선은 물론이고 지역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까지, 야당에서는 ‘정치 혈통’ 논란의 불씨가 됐다. 야당의 그런 체질은 널리 예상됐지만, 유독 그의 자각은 늦었다. 첫 칩거를 마치고 복귀해 치른 2010년 전당대회 승리도 야당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착각을 부추겼다. 그러나 야당은 그에게 잠시 당권을 맡겼을 뿐 체질을 바꾸거나 거부감을 털어낸 게 아니었다. 2011년 ‘분당 대첩’으로 한껏 기세가 오른 상태에서 치른 2012년 후보 경선에서 패배, 비로소 그는 분명한 현실인식에 이르렀다. 또 정계은퇴와 칩거를 택했다.
춘천 칩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강진 칩거 또한 전통적 은일(隱逸)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다. 강태공이 미늘 없는 바늘을 단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상이 알아주길 기다렸듯, 손 전 대표는 그저 공간적으로 떨어져 야당의 변화를 기다렸다. 역시 더뎠다. 야당은 두 차례의 대선은 물론이고 총선과 재보선,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하고서도 ‘기울어진 운동장’만 탓했지, 변화한 정치지형에 맞게 골대를 옮기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탈당과 국민의당 출범이 새로운 자극제가 됐다. 문재인 전 대표의 사퇴 후 ‘김종인 비대위’ 체제는 상당한 체질 변화를 과시했다. 물론 그것이 야권 분열과 선거 참패 전망에 따른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으리란 의심도 아직 짙다. 이 때문에 김 대표의 거듭된 손짓에도 손 전 대표가 귀환 선언을 미루고 있다. 대신 자신과의 정치적 인연을 잣대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를 가리지 않고 사실상의 선거지원에는 나섰다.
더는 머뭇거릴 이유나 여유가 없다. 야당의 체질 변화가 미심쩍다면, 총선 이후 ‘김종인 발 변화’를 굳히기 위해서라도 4ㆍ13 총선에서 실적을 쌓아야 한다. 다행히 수도권 후보들은 아직 그의 도움을 갈망한다. 오랜 고군분투 끝에 당선권에 들어선 김부겸 전 의원처럼 총선 이후 각별히 힘을 보태야 할 차기 주자도 떠오르고 있다. 자신의 전철을 밟게 해서야 정치선배로서 실격이다. 오랜 칩거와 명상에도 이미 흘러간 대통령의 꿈을 접지 못했다면 몰라도, 더는 뜸 들일 시간이 없다. 손 대표, 이제 그만 나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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